최초 보험은 언제 생겼을까. 고대 문헌에는 기원전 4000년 바빌론 시대에 위험을 전이하는 형태의 거래 기록이 처음 발견됐다고 한다. 1666년에 발생한 런던 대화재는 근대적 보험산업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자동차·항공·건강 등 다양한 분야의 보험이 등장하며 지금의 손해보험, 생명보험 산업이 자리 잡게 됐다. 이후 발전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익숙한 형태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형태의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은 언제가 될까. 우리는 그 시점을 예측할 수 있을까.
사실 보험은 지난 100여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다. 2015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를 선보이며 금융업에도 디지털과 혁신이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가 잘 아는 핀테크다. 그리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점점 속도를 내며 우리 일상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보험 산업에도 이미 기존 관행을 깨고 과감하게 인슈어테크에 도전하는 룰 브레이커가 등장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룰 테이커가 주를 이루던 보험업계로서는 신선하면서도 무서운 변화다.
2015년에 설립해 미국 주택보험을 다루는 레모네이드는 인공지능(AI)봇 기술력을 활용해 보험 가입부터 보험금 청구까지 과정을 디지털로 진행한다. 타깃도 처음부터 밀레니얼 세대로 정했다. 올해 7월 상장해 시가 총액만 벌써 4조원에 이른다. 테슬라는 자사 전기차 구매 고객을 위해 지난해부터 자체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고객 행동 패턴, 필요 보장 내용 등을 분석해 고객 맞춤형 보험을 자동차 회사 스스로가 판매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여러 금융사가 디지털 혁신을 위한 노력을 이어 가고 있다. 캐롯의 경우 올해 초 '주행거리'라는 고객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거리만큼 후불로 내는 퍼마일자동차보험을 선보였다. 이 상품은 합리성을 바탕으로 현재 5만건 이상 계약을 달성하고 있다. 여기에 '스마트ON' 시리즈 보험 등 이용한 만큼 내는 혁신 상품을 연이어 시장에 내놓고 있다. 기존 모범 사례를 따르기보다 '고객 경험 가치'에 집중한 것이다.
보험의 미래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있다. 바로 대중은 이제 더이상 빅데이터, 머신러닝,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등 기술을 새로운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혁신을 넘어 '뉴노멀'이 일상인 시대다. 여기에 주력 소비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소비 형태도 변하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구매 방식보다 온라인, 소셜 미디어 등을 활용해 소비하는 걸 즐긴다. 장기·고액의 비자발적 가입 상품이 많던 예전 보험 산업 환경과 비교했을 때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이 때문에 모든 플레이어는 '기술력'보다 '고객 가치 증진'에 몰두해야 한다. 혁신적인 고객 경험이 쌓여갈수록 가치 증진 없는 기술력은 고객의 선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 고객 생활 전반에 걸친 행동 데이터를 측정하고 그 가치를 증진하는 작은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고객을 움직인다. 실제 2012년에 설립된 미국의 트로브는 처음으로 '온디맨드 보험'을 출시하며 고객 라이프 스타일 향상에 집중한다. 언제 어디서나 고객이 원하는 보험에 필요할 때만 가입하고 청구 절차도 간편하고 빠르다.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트로브를 찾는 이유다.
한 번 혁신의 편리성을 경험한 고객의 신뢰는 두터워진다. 나에게 맞는 상품이라는 확신은 또 다른 수요도 창출한다. 이러한 흐름이 계속돼 또 수십년이 지난다면 그때 최초 보험과 마지막 보험은 무엇이 될까. 인슈어테크라는 말조차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때가 온다면 결국 살아남는 핵심 키워드는 '고객 가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날은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았다.
박관수 캐롯손해보험 New Biz&서비스부문장 상무 kris@carrot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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