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카프카, 가장 연극다운 연극으로 만나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오르 잠자가 불편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한 마리의 거대한 벌레로 변해있는 걸 발견했다.”
2020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극심한 공포와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실제로 사회적 거리두기, 이동 제약 등으로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다. 10개월째 유지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2.5단계까지 올라 시민들에게 분노와 두려움을 안겼다. 다행히 우리 국민들은 이 위기를 잘 견디고 방역에 협조하는 등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 1단계 거리두기로 전환됐다.
거리두기의 단계가 오르고 내리는 사이, 우리의 삶은 어땠을까?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못한 채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자영업 소상공인은 온 종일 손님을 기다리다 허무하게 오후 9시만 되면 매장의 문을 닫고, 열심히 일을 하고 싶은 직장인들은 내일은 출근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을 안고 뉴스 채널을 돌리곤 했다.
코로나가19가 몰고 온 우리의 일상은 고립되고, 외로움은 깊어져만 갔다. 영화관도, 연극 공연장도, 가수들의 콘서트장은 물론, 미술관, 박물관 등 대다수의 시설들은 폐쇄 되고, 운영을 해도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이 됐다. 무기력과 무능력, 의지와 절망이 교차되고, 이런 상념들은 뒤섞여 극심한 스트레스로 나타나기도 하고, 상실감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두려움, 외로움, 이런 일상의 고통은 이미 한 세기 전에 소설로 출간됐다. 바로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변신(die Verwandlung)’이다. 1916년 출간된 이 소설은 20세기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작가 카프카의 단편소설이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는데, 벌레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산업혁명으로 급변한 사회에 던져진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현실이 좌절되고, 능력의 상실로 가족의 영웅에서 골칫거리로 변한 그레고오르 잠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이 증오로 변화는 과정, 사회 전체의 가치관이 변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염려와 걱정이 무관심을 넘어 증오로 이어지는 가족들의 변화는, 무엇이 사람간의 유대를 만들고, 가족의 정을 채우는지 강하게 보여준다.
소설로서의 ‘변신’의 가치는 국내에만 이미 70종류가 넘는 번역본이 출간됐을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이 유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 지난해 공연됐는데, 초연, 재연, 단 두 번의 공연으로 한국예술평론가연합회 주관 제39회 최고예술가상을 수상했다.
수상자 명단에는 최초의 아카데미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등 2019년 대한민국을 열광시킨 12명의 예술가들이 있었다. 연극 한 편으로 2019년 최고의 예술가상을 수상한 극단 이구아구의 ‘카프카 변신(정재호 연출)’은 어떤 매력이 있을까?
연극은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을 잘 편집해 완벽함을 보여주는 영화, TV와 비교하면 무척 다름을 알 수 있다. 항상 라이브로 진행이 되고, 제한된 공간에서 무한정 늘릴 수 없는 무대장치, 출연 배우들을 활용해 보여주고 싶은 내용을 은유와 상징을 통해 표현한다.
어떤 장면에선 알 수 없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도 하고, 툭하고 튀어나오는 웃음에 상기되기도 한다. 절제되고, 압축된 방법으로 다양한 장면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예술이 연극이다.
이번에 세 번째 앙코르 공연에 들어가는 극단 이구아구의 ‘카프카 변신’은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순수한 연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랜 기간 연습을 통해 정제된 움직임, 미세하게 들리는 호흡, 서서히 변해가는 표정들, 급격하게 휘몰아치는 격정 등의 요소는 오랜만에 나온 연극다운 연극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유명 배우와 많은 자금을 투입해 화려함 추구, 소소한 알콩달콩 사랑을 담은 로맨틱 코미디 등으로 상업화를 지향하고 있는 상황에 순수 연극이라니 생소하기도 하다. 그러나 극단이 추구하는 순수함이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울림을 주고 있다.
공연을 연출한 극단 이구아구 정재호 대표는 “이번 작품에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현대인을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의해 일체의 관계를 박탈당한 채 고독한 상태에 빠져있는 것으로 묘사했다”면서 “기계문명에 의한 인간의 자기소외와 공동사회에 대한 개인의 대립 속에서 인간 실존의 자각을 모색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정재호 대포는 또 “카프카는 이 작품에서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면서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부조리로 규정하면서, 그 부조리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참된 존재인 실존을 회복하려 했던 카프카만의 실존철학이 이번 연극 ‘카프카의 변신’을 통해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연은 오는 25일까지이며, 평일은 오후 7시 30분, 주말과 휴일은 오후 4시,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3관에서 진행된다. 방문기록 작성, 발열체크, 매 공연마다 소독, 객석간 거리두기도 하고 있다고 하니 수준 높은 예술연극을 경험해보시길 추천한다.
극단 이구아구의 ‘카프카 변신’에는 드라마 ‘허준’, ‘대장금’, ‘해를 품은 달’ 등에 출연했던 서광재가 아버지 잠자 역을, 엄마 역에는 연극 ‘이구아나’, ‘연어는 바다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등에 출연했던 이은향, 연극 ‘카프카 변신’, ‘출세기’, ‘노부인의 방문’ 등에 출연했던 임은연이 나누어 출연한다.
그레고오르 역에는 지난해 출연했던 이동건과 신예 정형렬이, 여동생 그레타 역에는 지난해 출연했던 조지영, 정다은이 출연하고, 원로급 배우인 이일섭, 원근희와 새로 참여하는 엄지용이 지배인 역할을 맡았다.
음악은 박광배, 전혜인, 안무 윤민석, 마임지도 현대철, 무대감독 권혁우, 기술감독 송훈상, 조명디자인 이재호, 사진 배찬태, 조연출 고희선, 연출은 2019 최고예술가상을 수상한 한국연극연출가협회 부이사장 정재호가 맡았다.
대표 | 연출 정재호
현) 극단 이구아구 대표
현) 한국연출가협회 부이사장
전) 한국연극협회 사무총장
전)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전) 디지털 서울문화예술대학 외래교수
제 39회 연극부분 최우수예술가상 수상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주요작품: ‘카프카 변신’, ‘연어는 바다를 그리워 하지 않는다’, ‘이구아나’, ‘육자배기’, ‘바우덕이’, ‘황진이’, ‘백애’, ‘들뜬 도시’, ‘일곱 난장이’ 등
2020.10.08.~10.25
평일 오후 7시 30분 | 토,일, 휴일 오후 4시 | 쉬는 날 없음
드림아트센터 3관
작 Franz Kafka, 각색 Steven Berkaff, 번역 김철리
연출: 정재호
출연: 서광재, 이은향, 임은연, 조지영, 이동건, 정다은, 정형렬
그리고 이일섭, 원근희, 엄지용
음악: 박광배, 전혜인 안무 윤민석, 무대 민병구
마임지도: 현대철,
사진: 배찬태,
조연출: 고희선
기획: 하형주
전자신문인터넷 소성렬 기자 hisabis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