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수용성'의 사전 의미는 주민이 비활동 상태에서 활동 상태로 옮겨 가는 것이며, 능동성의 가장 낮은 단계에 위치해 수동성과 대비될 수 있다. 산업화를 위해 정부와 대기업 중심 국토 개발 및 시설 확충이 이뤄졌다. 일자리 제공, 세수 확대와 더불어 보상 차원의 편의시설이 제공돼 왔다. 주민의 좀 더 나은 삶과 밀접한 시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보여 주기 식 보상도 많았다.
주민 수용성 확정이 정부와 산업계가 추진하는 모든 사업의 필수불가결 요건은 아니다. 공공성을 위한 새로운 시설 구축 때마다 우리는 반대할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그때마다 주민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추진만 해서는 안 된다. 주민 수용성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 대화를 통한 설득과 이해로 완성돼야 한다.
산의 부산물로 에너지를 만들어 쓰던 시절에서 벗어나 연탄의 매력에 빠진 적이 있었고, 액화석유가스(LPG) 통으로 유해가스 없음을 거쳐 편리한 도시가스를 접하는 삶으로 우리는 이동해왔다. 연탄의 불연소에 따른 무수한 인명사고가 있었지만 그래도 땔감을 구해 생활하는 것보다는 편했다. LPG 통의 운반과 관리 소홀로 인한 문제점을 인지하면서도 편리함을 떨쳐 내지 못했다. 그리고 드디어 도시가스가 공급되면서 집 안에서 버튼만 누르면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수많은 사고 앞에서도 스스로 체면 걸 듯 아픈 기억을 잊으려 했다. 이처럼 우리가 지난 반세기 동안 연료 획득과 사용에 대해 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우선시한 것은 편의성이다.
최근 드라마에서 전화기는 전화기다워야 하고 TV는 TV다워야 하면서 다소 불편해 보이는 휴대폰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그저 화면 속 삶일 뿐 우리는 스마트폰을 곁에 두고 있다. 과연 스마트폰이 우리 삶의 패턴을 완벽하게 바꿨듯 새로운 연료 사용으로 이러한 변혁을 이루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소연료는 화석연료에서, 물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수소연료 에너지를 잘 저장해서 운반하면 전국 곳곳에, 그것도 넉넉하게 공급할 수도 있다. 도로 위 차량, 물 위 선박, 물속 잠수함, 하늘을 나는 항공기와 우주선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수소연료가 없으면 주민 생활은 불편할까. 상황에 따라 아직도 목재나 연탄을, LPG·도시가스와 휴대형 부탄가스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우리의 삶에서 수소연료는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그럼 왜 수소연료를 사용해야 하고, 정부는 왜 전 세계에서 수준이 가장 높은 수소산업 육성정책을 쏟아내고 있는가. 왜 대한민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경쟁하듯이 수소경제 중심지역이라고 선언하고 있는가. 과연 수소산업은 우리가 개발도상국을 거쳐 선진국으로 도약할 때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한 건설 산업, 석유화학 산업, 반도체 산업처럼 현 세대와 바로 다음 세대에게 혜택을 직접 줄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라고 단언할 수 있다. 여전히 석탄과 석유를 비롯해 다른 연료가 될 수 있는 자원들이 짧게는 50년, 길게는 500년까지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
수소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후손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이슈에 대해서는 미리 대비해야 한다. 현재의 우리를 위해서는 결코 아니다. 50년 후, 더 길게는 22세기의 후손들을 위해 지금부터 노력해야 한다. 현재의 삶이 어렵다고 해서 차세대를 위한 일을 게을리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수소전기차를 보급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수소발전소를 통해 생산된 전기를 단순히 해당 지역에 국한된 독립된 전력 공급이나 막연히 송배전을 통해서 다른 곳에 사용하겠다고 하는 것도 합리에 맞지 않다. 현재 전력을 소비하는 많은 제품의 에너지소비효율 향상으로 전력 생산량은 오히려 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수소 산업은 최근 이슈가 된 방사광가속기 유치에 따른 경제 기대 효과만큼의 인프라 구축을 통한 주민 편이성 제공과 더불어 수소에너지의 안정성을 인식할 수 있는 다양한 각도에서의 체험 활동을 바탕으로 주민 수용성을 끌어내야 한다. 수소산악트램을 타고 무등산권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올라 주상절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감탄하는 장면을 다시 한 번 상상해 본다.
이재영 광주과학기술원 지구·환경공학부 교수 jaeyoung@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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