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한미FTA는 국제면허증인가

미국 자동차 깜빡이는 빨간색, 한국차는 노란색.

미국에 살던 친구가 귀국하면서 타던 차를 가져왔는데 비싼 비용을 들여서 앞뒤 깜빡이 전체를 교체해야 한다고 투덜거리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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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석 선문대학교 스마트 자동차 공학부 겸임 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이러한 사소한 규정 때문에 다양한 자동차를 접할 수 없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자동차 안전 규정이 다르지만 깜빡이가 없는 것도 아니고, 미국 영화 때문에 빨간색도 익숙하니 사고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해서 소량의 차는 허용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규정에 뒷구멍이 생기고 있다.

자율주행 관련 법규가 허술한 틈을 타 이를 자동차 안전 규정이라고 갈음하고 한·미 FTA로 모든 운전보조장치 테스트를 면제받고 있다.

용어에 대한 법률 제약이 없으니 자율주행·반자율주행·주행보조장치, 심지어 FSD(Full Self Driving)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베타 버전이라고 안내하고 있지만 국토교통부에서 확인해 보니 당황스럽게도 테스트 버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제품 부재와 같은 마케팅 명칭으로 '베타 버전'이라 이른다고 한다.

정말 마케팅 명칭이라면 테스트 버전이 아닌 정식 판매용이라는 의미를 사용자에게 정확하게 고지해야 된다. 또 만일 오작동으로 사고가 발생할 경우 테스트 버전이 아니기 때문에 법정(法定) 책임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자율주행이나 운전보조장치 법규가 모호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고, 적용 차량 수가 적었다. 이뿐만 아니라 자율주행에 대한 무비판 및 긍정 인식으로 산업을 혁신한다는 생각이 많았기 때문에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나중에 고민할 문제로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허술함을 파고드는 뒷구멍으로 인해 많은 사람의 안전이 위협받는 수준이 됐으며, 이미 상당한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새로운 혁신을 위해 어느 정도의 위험성은 감수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정작 본인의 차량이 베타 버전 시험 차량과 사고가 나서 가족이나 이웃이 다친다면 이같이 말할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레벨3 자율주행 자동차에 대비하기 위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이 세계 최초로 오는 10월 시작된다. 자율주행정보 기록장치 장착 의무화, 자료 제공 및 자율주행차량 사고 조사위원회 설립, 보험사가 선 보상 후 제조사 상대 구상권 청구 등 세부 사항을 국토부와 경찰청이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운전면허 시험과 동일하다.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면허를 취득하지 않으면 무면허 불법 운전으로 단속되기 때문에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이다.

아무리 최첨단 자율주행 혁신 기술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기본 법을 지키는 것이 사회 책임과 의무이다.

만일 첨단 해외 기술이 국내 법규 기준의 자율주행 레벨3 기준과 다르다면 이 또한 금지하거나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운전자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하고, 참여 희망자에 한해 '성능이 우수하고 오류 가능성이 아주 작은 운전보조장치'라고 고지해야 한다. 또 테스트 버전이기 때문에 무상으로 베타 서비스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영석 선문대 스마트자동차공학부 겸임 교수(경찰청 EDR분석 자문) suatracker@charz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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