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강력하게 제재하면 상황 인식이 부족하다고, 약하게 제재하면 솜방망이를 휘둘렀다고 합니다.”
고삼석 전 방통위 상임위원이 이동통신사의 불법지원금 관련 제재를 결정하는 전체회의 도중에 불쑥 던진 말이다. 방통위가 어떤 제재를 부과하든 비판 받는다는 의미로, 여론을 의식할 필요 없이 규정과 절차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는 고 전 상임위원의 소신 발언이었다.
맞는 말이다. 방통위가 영업정지와 과징금을 부과하면 여론은 이통사 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이용자에게도 불편을 초래한다고 손가락질했다.
반대로 경징계를 결정하면 법률 위반이 분명함에도 방통위가 무딘 칼을 휘둘렀다고 혀를 차곤 했다.
방통위가 5세대(5G) 이통 상용화 이후 처음으로 다음 달 초 불법지원금에 대해 제재를 가한다.
지난해 4월 5G 상용화 이후 이통사의 가입자 모집 과정에서 이통 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 위반 행위가 분명하게 드러난 만큼 제재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방통위가 불법 또는 위법 행위를 엄단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과거에도 방통위의 제재가 임박하면 이통사는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로 여론의 도움을 얻으려 했다. 에둘러 방통위를 압박(?)하기 위한 포석이다.
다음 달 초 방통위의 제재를 앞둔 만큼 이통사 레퍼토리는 이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통사 레퍼토리는 방통위가 영업정지와 과징금 등 강력하게 제재하면 투자 여력을 줄이고, 전체 이통 시장을 위축시킬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용자 불편도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번에는 코로나19라는 새로운 메뉴를 추가할 가능성이 짙다. 코로나19로 5G 기지국 설치가 여의치 않아 5G 인프라 확장이 쉽지 않고, 소비 심리 위축으로 단말 유통 시장의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며 이전보다 강력한 어조로 어려움을 호소할 것이 예상된다.
방통위의 제재 수위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이통사의 식상한 레퍼토리가 이전과 달리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건 사실이다.
이통사는 코로나19 위기 극복 동참을 위해 올 상반기에 5G 투자를 4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 뉴딜에도 5G는 핵심 인프라여서 이통사의 협조는 필수다.
혹시라도 휴대폰 유통 시장이 냉각되면 코로나19 이후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리점과 판매점 등 소상공인이 궁지에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방통위가 강력한 제재를 부과할 것이라는 전망과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 뉴딜 등 이통사의 협조가 절실한 만큼 정상을 참작할 것이라는 전망이 갈리고 있다.
이통사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다. 방통위가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 상황과 5G 투자 등을 고려해 정무적으로 판단하길 바랄 뿐이다.
방통위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가 5G 투자와 이통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최소화하되 단통법 위반에 대한 단죄라는 묘수를 내놓을지 관심을 끌고 있다.
옛말에 동냥은 못 줘도 쪽박은 깨지 말라고 했다. 방통위가 이통사의 일탈이 정부든 민간이든 다수의 피해로 전가되지 않도록 제대로 방향을 잡아 줄 것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제재만이 능사는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뉴노멀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휴대폰 지원금 규제에 대해서도 5G 시대에 맞는 뉴노멀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