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 정문을 지나 차로 5분가량 달려 도착한 '지하처분연구시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보관 문제 해결에 핵심 역할을 하는 곳이다.
폐기물을 땅 속 깊은 곳에 두는 '심층처분시스템' 성능 검증이 이뤄진다. 실제 방사성 물질은 없지만, 보관 환경을 철저히 모사한다. 이 결과 방사성폐기물을 아주 긴 시간 동안 철저한 안전 속에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이곳에서 얻은 각종 검증 데이터와 조사결과는 향후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 부지 기준 마련에도 도움을 준다.
시설에 들어서면 가로·세로 6m 규모 거대 터널이 있다. 약 8도정도 완만한 경사 지하로 향하는 터널은 언뜻 봐도 매우 깊어 보였다. 지하시설 특유의 습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전체 길이는 551m, 깊이는 120m에 달하는 거대 시설입니다.” 기자를 안내한 조동건 방사성폐기물처분연구부장의 설명이다. 지난 2003년부터 구축을 시작, 총 2단계에 걸쳐 지금의 규모를 갖췄다고 한다.
터널을 걸어 내려가면서 심층처분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지하는 지상보다 방사성폐기물 보관 시 안전성 확보에 훨씬 유리하다. 깊을수록 지진여파를 피할 수 있고, 물이 흐르는 길이나 양도 줄어든다.
산소가 희박한 '환원 조건' 환경이라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만일 핵종이 유출돼도 이동성이 극히 제한된다. 물론 이런 심층처분시스템이 기능하려면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지하처분연구시설을 마련되고 실증 연구를 하는 이유다.
터널 곳곳에서 연구 목적 설비를 볼 수 있었다. 지표면보다 100m 아래 깊이에 마련된 공간에서는 겉보기에도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지하 500m까지 구멍을 뚫어 지하수 특성을 관측하는 관측공, 폐기물 용기에 쓰일 후보물질 장기부식을 시험하는 수조도 볼 수 있었다. 김건영 박사는 “지하 환경의 다양한 정보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이 시설의 주된 역할”이라고 설명해 줬다.
더 깊은 곳에는 가상으로 사용 후 핵연료 보관 환경을 모사한 곳도 있었다. 17도 온도인 다른 곳과 달리 이곳 온도계는 26.9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김 박사는 “사용후 핵연료는 스스로 열을 내기 때문에, 이것을 '처분공'에 묻어뒀을 때 환경 영향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며 “사용후 핵연료 대신 '히터'를 묻어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사성폐기물에 관한 모든 부분을 모사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원자력연은 정부가 현재 시설보다 더욱 깊은 500m 깊이 '지하연구시설(URL)' 구축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실제 시설과 동일한 시설을 구현하고 이를 연구해 안전성에 완벽을 기하려는 것이다.
조동건 부장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은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며 “보다 안전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실제 처분에 앞서 완벽한 연구를 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