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석 세비 삭감·국민소환제 도입
여야 새 지도부 '달라지자' 의지
모든 법안 게이트 키퍼 막강 권한
통합당, 초거대 여당 독주 견제 '사수'

무슨 일이든 첫 단추가 중요하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초반 분위기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21대 국회가 오는 30일 4년 임기를 시작한다. 지난 20대 국회가 패스트트랙 물리 충돌과 장기간 공백으로 최악의 평가를 받는 만큼 21대 국회에 대한 기대는 남다르다.

국회에 거는 기대만큼 역할이 중요한 시기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사회 곳곳이 마비됐다. 최근에서야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의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서로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다. 일상과 경제 회복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국회의 역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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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국회' 제도화 첫 단추

“과연 이번에는 일을 할까?”

21대 국회를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시선이다. 총선 레이스가 시작된 올해 초부터 각 당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일하는 국회'를 외쳤다. 구호에 그치지 않고 총선 공약으로 내걸며, 21대에선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을 퇴출시키겠다는 강경론까지 보였다. 그만큼 국민 사이에 '국회는 일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했다. 물리적 충돌까지 일어났던 20대 국회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총선에 임박해서는 불출마를 선언한 여야 중진이 나서서 '일하는 국회법' 20대 국회 통과를 제안하기도 했다. 법 처리는 무산됐지만 논의는 이어졌다. 재선 의원들과 초선 당선인들은 21대 국회 초반 과제로 '일하는 국회법' 처리를 언급하고 있다. 쟁점법안을 두고 계속된 대치에 입법 업무가 마비되는 문제점부터 고치고 시작하자는 분위기다.

177석을 확보해 초거대여당인 된 더불어민주당부터 일하는 국회법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 국정운영 지원 차원에서도 20대 같은 국회 공전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민주당은 원내에 '일하는 국회 추진단'을 구성하고 종합적인 국회개혁 방안 마련에 나섰다. 한정애 의원(3선)을 단장으로 조승래 선임부대표와 정춘숙, 조응천 의원이 참여한다. 초선 중에서는 고민정, 김수흥, 이용우, 정정순 당선인이 포함됐다. 추진단의 목표는 국회 시스템 혁신이다. 시스템적으로 국회의원이 업무를 게을리 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해 법안 처리에 속도를 더한다. 21대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사실상 확정된 박병석 의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개원 직후 일하는 국회 TF를 만들겠다”며 일하는 국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일하는 국회 관련 주로 언급되는 내용은 △국회 상시화 △불출석 세비 삭감 △국민소환제 도입 등이다. 국회 상시화는 상임위 법안소위를 확대하고 법제사법위원회를 월 2차례 등 정기화 해 항시 법안이 처리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내용이다. 여야 모두 총선 때부터 일하는 국회를 강조해 온 터라 이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반면 불출석 세비 삭감과 국민소환제 도입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회의에 불출석 하는 의원들의 세비를 삭감하고 징계의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는 등 실질적인 패널티가 담겨있는 만큼 부담스러운 눈치다. 실제 20대 국회에서도 여야 모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다 입법이 무산됐다.

초반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여야 새 원내대표들이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협의하면서 막판 민생법안 처리에 나서는 등 달라지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미래통합당 역시 21대 국회에서 일하는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상임위 놓고 신경전

일하는 국회를 위해선 무엇보다 여야의 협치가 중요하다. 제도화를 했다 해도 여야 갈등에 따른 보이콧 가능성은 상존한다. 21대 국회 상임위 배부는 협치의 첫 장이다. 여당이 177석을 확보한 상황이라 야당의 상임위 배분에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상임위 배분에 대해 여당은 '속도론', 야당은 '신중론'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서도 21대에서 만큼은 원 구성 법정시한을 지키고 바로 의사일정을 개시, 3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등 굵직한 이슈를 빠르게 처리한다는 구상이다. 통합당은 속도보다는 핵심 상임위 학보가 중요하다. 민주당에 비해 수적 열세에 놓여있는 만큼 핵심 상임위 포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전포인트는 '상원'으로 불리는 법사위원장 자리다. 법사위는 모든 상임위 법안이 모여 본회의로 올라가기 전에 거치는 창구다. 초거대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곳이다. 통합당은 다른 곳은 몰라도 법사위원장만큼은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반면 민주당도 법사위원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의 법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처리가 늦어지는 악습을 끊겠다는 이유다.

그동안 법사위원장은 야당 의원이 맡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당초 여당 몫이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법사위원장은 과거 줄 곧 여당 의원 몫이었다가 김대중 정부 시절 한나라당의 주장으로 야당 의원이 맡는 관례가 생겼다.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도 논란이다. 체계·자구심사는 입안된 법률의 법적 검토와 심사를 위한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내용까지 실질적 심사를 하는 경우가 잦았다. 타 상임위 법의 내용을 고치는 사례까지 나오면서 월권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심사를 이유로 기약없이 계류상태에 머물다 폐기되는 법안도 다수여서 법사위 폐지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다수 의석수를 가진 정당이 수적 우위로 법안을 밀어붙이거나 날치기 법안 등을 방지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해 법사위 폐지에 반대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준연동형비례제를 둘러싼 정당간 이해관계도 숙제다. 이번 총선에서 비례위성정당 등장으로 준연동형비례제의 한계점을 드러낸 만큼 폐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야 이견 없이 지금의 연동형비례제는 폐지돼야 한다는 목소리지만 갈등은 아물지 않았다. 여야 모두 비례위성정당 사태에 대해 서로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통합당의 경우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과의 통합을 아직 마무리 짖지 못하고 있다. 양당 차원에서 통합을 공식 발표하긴 했지만 실제 통합 시기는 알 수 없다. 결국 연동형비례제 폐지를 위한 협의 과정에서 지난 갈등이 다시 드러나고, 또 다른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새로운 견제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회 관계자는 “역대 국회를 봐도 초반기에는 협치와 일하는 국회 등을 강조하지만 협치의 접점이 모인 적은 없었다”며 “다만 21대 국회는 코로나19라는 특수상황과 177석 거대여당 구도인만큼 과거와 같이 여야 간 극단적인 대립 상황이 되풀이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