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 발행 나설만큼 유동성 위축 여전
환경·안전 시설투자 세액공제 상향
중간제품 개별소비세 면제 등 요청
정유업계가 경영 부담을 완화해 달라며 제출한 건의사항을 정부가 일부 받아들였지만 추가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납부 유예해준 관세와 석유부과금 만으로는 유동성 위기를 완전 해소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애초 정유업계를 도우려는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환경보전·안전시설 투자세액공제율 상향과 석유 중간제품(중유·벙커C유)에 적용되는 개별소비세 면제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유업계는 산업통상자원부에 총 11개 항목에 달하는 건의사항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 건의사항은 △원유 및 할당 관세 인하 △액화석유가스(LPG)사와 석유수입부과금 형평성 개선 △환경보전·안전시설 투자세액공제율 상향 △석유류 부과 국세 및 석유수입부과금 납부 유예 △정유공정용 중유 개별소비세 조건부면세 적용 등이다.
이 가운데 정부가 받아들인 사항은 원유 관세 및 석유수입부과금 납부 유예다. 앞서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각각 관세와 석유부입부과금 납부를 2개월, 90일 유예해주기로 한 바 있다.
정부가 두 사항을 우선 받아들인 것은 정유사 재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정유사들은 각각 관세 5446억원, 석유수입부과금 7400억원을 순지출했다. 이는 같은 기간 SK이노베이션 1조2693억원, GS칼텍스 500만원, 현대오일뱅크 5220억원, 에쓰오일 4200억원 등 총 영업이익 약 2조2200억원 대비 58%(1조2846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정유업계는 두 조치만으로는 유동성 개선 효과가 미진할 것으로 본다. 작년 정유 4사가 순차입한 금액은 21조4111억원에 이른다. 이는 직전 년도 대비 40.8% 급증한 것이다. 이자 부채 등으로 나갈 돈이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정유사 입장으로서는 추가 유동성 완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한 셈이다. 최근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가 기업어음(CP) 발행 시장에서 각각 6650억원, 4200억원을 긴급 수혈한 이유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보통 회사채를 발행하는 정유사들이 CP 발행까지 나선 것은 유동성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의미”라면서 “시간이 걸리는 회사채 조달 대신 하루라도 빨리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긴급 추가 조치로 환경보전·안전시설 투자세액공제율 상향을 꼽는다. 정부가 2017년도와 2018년도 세법 개정으로 환경보전시설과 안전시설 투자세액공제율을 기존 3%에서 1%로 축소하면서 정유업계는 작년 기준 400억원 안팎 부담한 셈이 됐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환경보전시설과 안전시설 투자세액공제율이 낮아지면서 관련 투자 위축이 우려된다”면서 “이는 결국 일자리 창출과 근로자의 삶의 질을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유업계는 비슷한 이유에서 석유 중간제품 개별소비세 면제도 요구하고 있다. 통상 정유사들은 원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제시설에 원유보다 값싼 중유를 투입, 석유 제품을 생산한다. 정부는 이 중유에 ℓ당 개별소비세와 교육세를 각각 17원, 2.55원을 부과한다. 정유업계가 관련 세금으로 지출한 금액은 작년 247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금 같은 마이너스 정제마진 상황에서는 원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가동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제공정 원료용 중유에 과세하는 것은 최종 소비 행위에 부과하는 개별소비세 취지와도 맞지 않다”면서 “중유를 개별소비세법상 과세물품에서 제외하거나 조건부 면세해주는 게 타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들 건의사항은 세법 개정 사안이다. 현 정치 상황과 절차 등을 감안할 때 단기 해소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한국석유공사와 정유사 간 실무 태스크포스(TF)를 매주 운영하는 등 업계와 지속 소통하고 있다”면서 “국제 유가와 국내 석유제품 가격변동, 경영 환경 등을 고려해 필요한 조치를 협의,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