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4사, 하루 700억원씩 손실 추산
마이너스 정제마진 3주째 이어지며
희망퇴직·공장 가동률 하향 등 조치
2분기 실적 반등도 녹록지 않아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2020년 정제마진국내 정유사 가동률 추이보통휘발유 평균 공급가격 추이 # 국내 정유업계가 최악의 경영 위기에 직면했다. 업계 1위 SK이노베이션의 경우, 1분기 적자폭이 최대 9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됐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정유 수요를 끌어내려 실적에 악영향을 미쳤다. 정유사들은 임시 방편으로 공장 가동률을 낮추는 등 활로 찾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유업계 실적 급락 불가피
증권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에너지는 올해 1분기 839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2분기 영업손실도 2666억원에 달해 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2위 GS칼텍스도 마찬가지다. 1분기 7175억원에 이르는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정유 부문에서만 영업적자 85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분석됐다. 업계 3~4위인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도 지난해 대비 실적이 큰 폭 둔화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업계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에쓰오일의 경우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검토한다. 사상 최악 실적이던 2014년(영업손실 2897억원)에도 희망퇴직을 실시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유래 없는 비상 상황이다.
황유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산업 활동 축소 영향은 2분기 실적에 본격 반영될 것”이라면서 “부진한 수요 영향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제마진 하락 직격탄
실적 악화 원인은 정제마진 하락이다. 4월 첫 째주 복합 정제마진은 마이너스(-) 1.4달러로 3월 셋 째주(-1.9달러)와 넷 째주(-1.1달러)에 이어 3주 연속 0달러를 밑돌았다. 원유를 정제해 만든 석유제품이 원유보다 싸다는 의미다. 정유사로서는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가 커지는 셈이다.
이유는 공급 과잉이다. 애초 국제 유가가 하락하고 수요가 뒷받침되면 정유사 수익은 늘지만, 현재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수요가 크게 둔화됐다.
이는 고부가가치 항공유도 마찬가지다. 대한항공 국제선 등 항공사들이 대부분 멈춰서면서 항공유 내수 수요는 70% 이상 급감한 것으로 파악된다. 정유업계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마이너스 마진에도 항공유를 긴급(스팟) 수출하는 실정이다. 두 달 이상 재고로 쌓아두면 제품이 변질돼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재고손실마저 커졌다. 통상 원유는 한국에 들어올 때까지 2~3주 소요된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국제 유가 급락으로 도입 가격 대비 판매 가격이 낮아졌다. 이는 원유 재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정유 4사는 매일 700억원 안팎 손실을 입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이미 2~3개월 전에 구매한 원유들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공장 가동을 중단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또 공장을 멈춘다 해도 재가동하는데 상당 시간 소요되고, 이 기간 시황이 급반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대규모 손실을 고스란히 부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동률 조정 등 대처 나서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에너지는 이달 공장 가동률을 3월에 이어 15~20%포인트(P) 낮췄다. 이 회사가 이 정도 수준으로 공장 가동률을 하향 조정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통상 정유사는 정기보수 등 공정관리를 제외하고 인위적으로 가동률을 낮추지 않는다. 그만큼 현재 상황은 이례적인 셈이다.
SK에너지는 유가 변동과 시황에 대응하기 위해 매일 유가점검회의와 비상운영회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도 대처는 비슷하다. GS칼텍스는 핵심 정유 공정인 원유증류장치(CDU) 정기보수를 이달 시행했다. 예정일보다 앞당겼다. 현대오일뱅크도 5월 22일까지 제2공장 정기보수를 조기 진행한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석유제품 생산량은 36만배럴로 회사 전체 생산능력의 3분의 2에 이른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제 능력을 갖춘 국내 정유사들이 공장 가동률을 낮춘다는 것 자체가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시황 악화가 지속된다면 손실을 줄이기 위해 공장 가동률을 추가적으로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