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안철수의 제3지대, 제3지대의 안철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따른 서울시장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5월 어느날. 종로구 인근에서 당시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를 만났다. 서울시 청사진 설명에 열을 올리던 안 후보가 걸려온 전화의 수신처를 확인하더니 양해를 구했다.

Photo Image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 <전자신문DB>

마침 그날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손학규 바른미래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사무실 한쪽으로 자리를 옮긴 안 후보는 “꼭 앞만 보고 뛰겠다.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겠다”면서 통화를 마무리했다. 당시 손 위원장은 자신에 대한 전략공천으로 잡음이 일자 불출마를 택하고 안 후보에게 힘을 실었다. 손 위원장은 안 후보 선대위원장을 겸하고 있었다.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안 후보는 낙선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행보를 두고 당내에서 이견이 끊이지 않던 2019년 8월 어느날. 여의도 인근 식당에서 손 대표를 만났다. 손 대표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노련하고 경험 많은 정치인으로서 여유를 잃지 않았다. 정치권을 떠나 해외에 머물고 있던 안철수 전 대표에 대해서도 열린 모습을 보였다. 명확히 당 대표 자리를 넘겨주겠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양보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읽혔다. 다른 곳에서 손 대표가 내놓은 발언의 뉘앙스도 그렇게 해석됐다.

#2020년 현재. 알다시피 안철수 전 대표는 손학규 대표와의 인연을 끊었다. 지난달 안 전 대표의 정계 복귀에 이은 두 사람의 회동이 있었다. 안 전 대표가 '지도부 교체'를 제안했지만 손 대표는 거부했다. “오너가 최고경영자(CEO) 해고를 통보하듯”이라고 표현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안 전 대표는 기다리지 않았다. 추가 협의를 시도하지 않고 이튿날 곧바로 탈당을 선언했다. 안 전 대표는 신당 창당의 길을 택했다.

한국 정치권 특유의 중도보수층 집결지를 일컫는 이른바 '제3지대'의 결집은 이같이 험난함의 연속이다. 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으로 상징되는 양당 구도에서 세 번째가 차지할 자리는 넓지 않다.

'안철수'는 한때 '혁신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며 2010년대 초·중반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정치 신인임에도 브랜드 파워가 만만치 않았다. 무산됐지만 최근 창당을 추진하면서 '안철수신당'을 당명으로 채택하려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안철수발 열풍은 지속성을 띠지 못했다. 본인이 주요 선거에서 패하거나 중도 포기했다. 처음에는 백팩을 메고 홀연히 해외로 떠나는 모습이 참신했지만 기존 정치공학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양보'와 '철수' 행보가 반복되면서 논란을 낳았다.

Photo Image
9일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 대강당에서 열린 국민당 창당발기인대회에서 창당준비위원장에 선출된 안철수 전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찌됐든 1년 4개월여 만에 국내 정치계에 복귀한 안 전 대표는 지난 9일 '국민당' 창당 발기대회를 열었다. 직접 창당준비위원장직을 맡았다. 안 위원장은 “진영 정치를 무찌르겠다”고 말했다. 과거 논란을 의식한 듯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뚫고 가겠다”고 다짐했다.

안 위원장 말대로 제3지대 앞에는 많은 난관이 놓여 있다. 이미 제1야당인 한국당이 새로운보수당과의 통합을 논의하고 있다. 안 위원장이 떠나온 바른미래당도 대안신당, 민주평화당과 제3지대 가치를 내걸고 통합을 추진하기로 했다.

안팎으로 상황이 녹록지 않다. 안 위원장이 자신을 중심으로 제3지대를 만들지 제3지대 여러 세력 가운데 하나로 남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다만 안 위원장이 직접 밝혔듯이 이번에는 어떤 난관에도 멈추지 않는 굳은 의지만은 꼭 보여 주기 바란다.

Photo Image

이호준 정치정책부 데스크 newlevel@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