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97>플랫폼이라는 렌즈로 보는 혁신

신기루(蜃氣樓). 무명조개 신, 기운 기, 다락 루를 합쳐 한 단어가 됐다.

설화에 따르면 무명조개는 꿩이 찬 겨울 바다에 들어가서 조개가 된 것으로, 이듬해 봄에 승천하면서 기운을 뿜어내면 사람들 눈이 흐려진다고 한다. 이 신(蜃) 자가 바로 용을 뜻하는 진(辰)자에 뱀 훼(〃) 자를 붙여 만든 것이니 옛 사람은 능히 공중에 누각을 세울 영물로 이무기를 떠올렸나 보다.

지속 성장만큼 기업에 신기루 같은 것도 없다. 잘나간다는 기업만 모은 '포천 50' 기업만 봐도 그렇다. 고성장을 구가하며 포천 50에 진입했지만 2년도 채 못돼 성장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우리는 기업 성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은 것 아닐까.

이브 도즈 프랑스 인시아드 교수는 이것을 '간헐성 혁신'의 한계라 말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에는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첫째는 새로운 기회 공간을 찾는 것이고, 둘째는 그것을 성장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봤다.

정말 그럴까. 미국 물류운송업체 UPS 사례를 보자. 그즈음 소포 우송 시장은 포화되고 있었다. 경쟁사 페덱스는 물론 미국우정공사(USPS)까지 선전하고 있었다. 성장률 전망은 매년 떨어졌다. 정작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한 PC 메이커가 UPS를 찾아온다. 문제는 부품 물류였다. PC가 고장난 고객에게 이런저런 부품을 보내야 했다. 고객은 이튿날 당장 받기를 원했다. 물량은 많지 않았고, 익일 배송으로 처리하면 됐다. 계약을 마친 이튿날 담당자는 문득 '이곳만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꽤 괜찮은 비즈니스 아이템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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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S는 팀을 꾸려서 PC 메이커 공급사슬을 봤다. 그리고 아웃소싱할 만한 사례를 추려냈다. 그리고 이것에 '서비스 부품 물류'(SPL)란 이름의 솔루션으로 만들어 냈다. 녹록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핵심 사업이 됐다.

다른 흥미로운 것도 눈에 들어왔다. 대개 고장 원인이 명확지 않으니 부품은 이런저런 여분까지 챙겨 보내기 일쑤였다. 그러니 남은 부품은 돌려보내든 보관해야 했다. 거기다 재생해서 사용할 만한 부품도 나왔다. “이럴 거라면 재고관리 업무를 넘겨받으면 어떨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다른 산업에도 비슷한 문제가 보였다. 의료 물품도 핵심은 비슷했다. 짧은 시간에 확실하게 배달해야 했다. 보안과 냉동 운송도 덧붙였다. 처음에 PC 부품 배달로 시작한 것이 얼마 뒤 전에 없던 물류 플랫폼이 돼 있었다.

지금 UPS는 아웃소싱 물류관리 서비스 선도자가 됐다. 단순부품 배달 업무에서 찾은 기회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지금 연간 60억달러짜리 플랫폼이 됐다. 어떤 것이든 이 위에 올리면 비즈니스가 된다.

도즈 교수가 말하는 것도 이것이다. 새로운 매출이 주는 기회에 멈추지 말하고 말한다. 그 대신 플랫폼이라는 렌즈로 다시 한 번 들여다보라고 한다. 여기에 한두 번의 간헐성 성공과 성장 대신 지속 성장의 비결이 있다고 말한다.

신기루의 다른 말은 공중누각이다. “하늘에 떠있는 줄 알았네. 안개 걷힌 후 보니 강 너머 언덕 위에 서 있네.” 처음엔 신기루라 생각했지만 정작 든든한 기반 위에 서 있던 무언가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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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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