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저성장 기조에 따라 새해 자동차 시장이 올해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 간 정치·무역 갈등과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가 저성장을 부추기고, 신흥국 성장마저 더딜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고급차·친환경차(전동차) 시장 확대는 지속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보성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장은 최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에서 '2020년 글로벌 자동차 산업 전망'을 통해 “내년 신흥 시장 소폭 회복에도 미국과 서유럽 부진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자동차 판매는 올해 전망치 8695만대보다 0.4% 증가한 8730만대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면서 “언제쯤 9000만대 수준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전망했다.
이 소장은 “새해 저성장 기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글로벌 자동차 판매도 정치 상황이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면서 “자동차 업체 입장에서 환율과 국제유가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자동차 시장과 관련된 주요 이슈로는 △미-중 무역 갈등과 저성장 기조 △국가 간 지정학적 리스크 △영국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 △동북아시아 한·일 관계 악화와 북핵 리스크 지속 등이 꼽혔다.
지역별로 미국은 경기 불확실성 확대로 1.6% 감소한 1680만대에 머무를 것으로 진단했다. 올해 10%대 감소가 예상되는 중국은 새해에 친환경차(NEV) 보조금 폐지 전 특수효과가 나타나면서 3.9% 증가한 2130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소장은 “지난 몇 년간 선진국 시장이 정체됐지만 신흥국 시장은 성장하면서 실적을 만회해 왔다”면서 “새해에는 대내외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4대 신흥국 시장이 성숙되면서 정체가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신흥국 성장 폭도 제한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자동차 판매가 13% 수준까지 급감한 인도는 내년에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경기 회복 국면에 진입, 4.0% 증가한 303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6.8%의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브라질은 새해 경기 회복에 따른 판매 호조에도 플리트 시장(법인·렌터카 등 대량구매처 판매) 성장세 약화로 3.2% 늘어난 273만대로 예상된다.
내수는 소폭 상승이 전망된다. 올해는 수입차 공급 문제와 주요 모델의 노후화에 따른 소비 심리 약화로 2.6% 감소한 175만대로 예측됐다. 내년에는 경기 부진에도 주요 신차 출시로 1.2% 증가한 177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판매 부진에도 SUV와 고급차·전동차는 성장 지속세가 유지될 것으로 예측된다. SUV는 소비자 선호도 상승과 신차 출시 증가에 따라 승용차 시장 내 판매 비중이 올해 35.6%에서 새해에 36.9%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고급차도 신흥국 성장과 차급 다양화로 올해 1027만대에서 내년 2.8% 증가한 1056만대로 예측됐다.
전동차는 올해 주요국 규제 강화와 전기차(BEV) 판매 호조에 힘입어 15.3% 증가한 429만대로 관측됐다. 내년에는 주요 업체의 BEV 신모델 출시가 증가하고, 유럽 배출가스 규제 강화로 성장세가 확대돼 29.3% 늘어난 555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 소장은 “미래차 시대를 앞두고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자동차 업체 입장에서는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는 새해에 물량을 크게 늘릴 요인이 없다”면서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져서 차량 가격을 올릴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원가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