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여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차기 총리 후보는 정세균 전 국회의장으로 낙점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을 직접 찾아 차기 국무총리로 '경제통'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지명했다. 그러면서 후반기 국정운영의 초점을 '경제' '협치'에 맞추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당초 여권 내에서는 국회에서 논의 중인 선거법 개정안 등 패스트트랙 법안이 처리된 뒤 총리 지명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문 대통령은 이날 전격 발표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왕이면 국회 상황이 다 종료되고 차분하게 발표할 수 있기를 바했지만 선거 일정이나 여러 하반기 국정운영의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상황을 마냥 기다릴 수 없는데다 최근 청와대를 겨냥한 검찰의 수사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공직분위기를 전면 쇄신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에서 총리 인선이 앞당겨 이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게감 있는 여당 정치인을 전진 배치하면서 국정 전반 장악력을 높이겠다는 뜻이다.
정 후보자는 민주당 내 대표적인 '경제통'으로 정평이 나있다. 하반기 문재인 정부 최대 국정과제인 '경제 활력 확보'에 올인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인사로 풀이된다.
정 후보자는 20대 전반기 국회의장 시절 4차 산업혁명 대응에도 각별히 신경썼다. 그는 2017년 전자신문과 취임 1주년 인터뷰에서 국회에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후 국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 산파 역할을 했다. 4차 산업혁명 관련 법률 조성을 위한 국회 내 기반을 조성했다는 평가다. 개별 상임위원회와 산업을 아우르면서 혁신 산업 성장을 막는 규제를 신속하게 개선하고 대한민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4차 산업혁명 퍼스트무버가 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자는 취지였다.
아울러 이번 인사는 국회와 행정부의 협업은 물론 야당과의 협치가 중요한 시점에서 국회의원 6선에 국회의장까지 지낸 정 후보자가 적임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평소 온화한 인품으로 알려진 만큼 각 부처를 안정적으로 조율하는 것뿐 아니라 행정부와 국회 간 협치, 여야 협치를 끌어내는 데도 주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국회의장으로 여야를 운영해왔던 협치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비상한 각오로 모셨다”고 선임 배경을 밝혔다.
정 후보자가 야당과의 협치를 실제로 이뤄낼지는 지켜봐야 한다. 이날 야당은 정 후보자 지명을 두고 '삼권분립' 파괴와 '독재'라고 비난했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문 대통령이 삼권분립을 무참히 짓밟고 국민의 대표기관 의회를 시녀화 하겠다고 나섰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의 비당권파가 창당을 주도하고 있는 새로운보수당도 대변인 논평에서 “입법부 수장을 지낸 인사를 행정부 2인자로 앉히겠다는 건 헌법에 명시된 삼권 분립의 원칙을 파괴하고, '삼권 옹립'을 받아 헌법 위에 군림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기대감을 내비쳤다. 김종대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국회의장에서 총리로 진출하는 것은 선례가 없어 다소 우려스러운 대목이 있다”면서도 “6선의 경륜과 역량이 국정을 운영하는데 충분히 발휘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지명 후 정 후보자는 3권 분립 논란과 관련한 기자들 질문에 “전직이긴 하지만 의장을 했기 때문에 적절한지 고려했다”며 “반대의견 등 토론하면서 (우려를)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청문회 통과 가능성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발탁됐을 때 검증을 한차례 거쳤기 때문이다. 다만 총리의 경우 다른 장관과는 달리 국회 표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야당 의원의 반대 관문을 넘어야 한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