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수출장벽, 합동 정보전으로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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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정 KTR 원장

얼마 전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가 발표됐다. 매년 수능시험 뉴스를 볼 때마다 학생이던 시절과 학부모로서 지금을 비교하게 된다. 물론 요즘 학생들이 훨씬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 대입은 초겨울 시험만으로 당락이 결정됐다. 정시 확대 등 논의가 한창이지만 요즘은 학창 기간 내내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대학별 제각각인 전형 정보를 파악하고,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마련해야 한다. 예전 학부모들은 경쟁률을 보고 원서를 내는 '눈치작전' 정도에만 동원됐지만 지금은 '정보전' 주체다.

기업 수출도 비슷하게 변했다. 예전에는 수출을 위한 가장 큰 걸림돌이 '관세'였다. 그러나 자유무역을 내세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이후 관세는 수출장벽으로 기능, 역할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무역기술장벽(TBT)'이라는 새로운 장애물이 세워졌다. 수출 기업들은 국가별 관세율이 아니라 더 복잡하고 개별화된 기술 규제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해 WTO에 통보된 각국의 기술 규제는 3065건에 이른다. 매년 늘고 있다. 올해 역시 역대 최대치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자국 산업과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각국이 앞다퉈 도입하는 TBT는 우리 수출에서 높은 허들이 되고 있다.

특히 우리가 개척해야 할 신 시장으로 주목되는 '신남방' 국가를 비롯해 아프리카,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 TBT 통보 건수가 전체에서 약 80% 이상을 차지한다. 이미 치열한 선진국 시장을 넘어 수출 다변화로 새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우리 기업을 더 어렵게 한다.

무역기술규제 내용은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실례로 최근 페루는 에어컨, 냉장고 등 에너지효율 인증 취득 및 라벨 부착 의무화를 시행하겠다고 WTO에 통보했다. 그러나 해당 규제는 제품에 적용하기 어려운 과도한 내용이 포함됐다. 기준도 모호해 수출 기업이 대응하기 까다롭다.

기업이 각국의 TBT 정보를 직접 찾아내 대응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중소기업은 제품 개발과 생산에 집중하기도 버겁다. 수험생이 공부에 집중하고 학부모들이 대학별 전형 정보를 파악해서 대응하듯 국가별 TBT 극복은 민간 차원뿐만 아니라 공공이나 정부 역할도 중요하다.

이 같은 이유로 국가기술표준원은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을 총괄운영기구로 TBT 컨소시엄을 구성, 운영한다. KTR는 페루에서 국표원과 공동 대응해 과도한 에너지효율 라벨 관련 규정을 완화하고, 기업이 규제 대응에 시간을 충분히 보내도록 시행일을 유예시켰다.

사실상 기술규제 극복은 민·관 공동 대응과 합동작전이 필요한 정보전이자 통상외교전이다. 기업은 양질의 제품 개발과 시장 개척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기업과 정부는 수출국 정부의 기술규제 동향을 파악해야 한다. 또 정부는 각국 정부와 협상해 우리에게 불리한 규정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 기술규제 모니터링만으로는 현지에서 실제로 겪는 어려움을 모두 파악하기 어렵다. 기업들은 수출 과정에서 체감한 각국 규제의 대응 어려움을 정부와 공유하고 긴밀히 논의해야 한다. 빠른 기술규제 대응은 이 같은 협력 체계로 가능하다.

TBT 컨소시엄에는 국표원과 KTR뿐만 아니라 연구기관, 무역 관련 정책기관, 유관 협·단체가 참여한다. TBT 컨소시엄은 수출 걸림돌이 되는 기술규제 정보를 기업에 제공하고, 불합리한 기술규제에 대응한다. 기술 컨설팅으로 기업 수출 성공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에도 앞장선다.

요즘 대입이 정보전이듯 수출도 정보전이다. 수험생 가족 모두 협심해야 좋은 입시 결과를 낳는 것처럼 민·관을 포함한 경제 주체 모두 힘을 모아야 해외 기술규제 장벽을 넘을 수 있다. 기술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혼자 골머리를 앓고 있지 말고 부담 없이 우리 KTR와 TBT 컨소시엄을 이용하길 바란다.

권오정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장 kwonohj@kt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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