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9시를 넘긴 퇴근길. 직장인 강수연(35)씨가 아차 싶어 전화기를 꺼내든다. 오늘은 꼭 백화점 문화센터 필라테스 강좌를 등록하려 했건만, 매장도 상담센터도 이미 문을 닫았다. 혹시나 해서 전화를 걸자 반가운 음성이 들린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단순한 자동응답이 아니다. “목요일 강좌는 이미 매진됐는데 금요일 시간대로 알아봐 드릴까요.” 로봇 상담원이 친절한 음성으로 강씨와 대화를 주고 받는다.
백화점 업계가 고객상담 업무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달부터 문화센터 관련 문의를 자동 응대하는 AI 콜봇의 기술검증(PoC)에 들어갔다. 챗봇이 텍스트 기반 서비스라면 콜봇은 상담 과정을 음성으로 옮겨온 구조다.
운영시간·휴무일 등 단순 정보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수준이 아니라, 구체적 주제에 대해 문답식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수준을 목표로 했다. 문화센터를 시작으로 서비스 영역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김근수 롯데 AI팀장은 “실제 문의·응대로 이뤄진 발화 데이터가 축적되고, 대화 시나리오에 음성합성 기술까지 접목된다면 현장 업무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각종 백화점 정보도 안방에서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구글 AI 스피커인 '구글홈'과 연계해 지난달 22일 AI 상담사 S봇에 음성 기능을 도입했다. 지난 5월 챗봇 형태로 시작한 S봇은 도입 6개월간 월평균 7만명이 사용했으며, 문의 건수는 16만건에 달한다. 업무 효율화 효과도 거뒀다. 신세계백화점 콜센터는 S봇 도입 이후 단순 문의가 10% 가까이 감소했다. 특히 콜센터가 문 닫은 저녁 8시30분 이후 S봇 이용 비중이 전체의 30%에 달했다.
현대백화점도 AI 스피커 클로바, 누구(NUGU)와 제휴를 맺고 각 지점별 쇼핑 정보를 음성으로 안내한다. 연령·성별에 맞춘 상품 추천은 물론 최저가 검색, 적립금 행사까지 묻는대로 척척 대답한다.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AI 로봇(LG 클로이 홈로봇)을 활용한 매장 안내 서비스도 현재 무역센터점과 신촌점에서 테스트 중이다.
비단 상담 업무뿐만이 아니다. 백화점들은 AI 기술을 활용한 정교한 개인화 마케팅으로 비즈니스 효율도 극대화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온·오프라인에 축적된 고객 관련 데이터를 AI가 분석하고 예측까지 하는 '디지털 AI 플랫폼'을 개발해 내년 4월 적용할 계획이다.
입점 브랜드는 이 플랫폼을 활용해 직접 마케팅 대상 고객을 선정하고 DM을 발송할 수 있다. 모든 고객에게 동일한 정보를 제공하던 것에서 벗어나 구매 가능성이 높은 고객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최적화 마케팅이 가능해진다.
실제 지난달 7개 화장품 브랜드를 대상으로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고객 적중률(문자를 받은 고객이 매장을 방문해 구매할 확률)은 10배나 뛰었다. 고객만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날씨와 매출의 상관관계, 고객 유형과 트렌드 등 영업에 참고할 각종 지표도 AI 플랫폼을 통해 제공할 계획이다.
신세계백화점 AI 고객분석시스템 'S마인드'도 고객 성별·연령·지역·주거래점·요일별 구매 패턴 등 100여개 변수를 활용해 빅데이터를 생성하고 맞춤형 쇼핑 정보를 우선 전달한다. 갤러리아백화점 역시 대화체로 작성된 비정형 데이터인 VVIP 메모를 AI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해 정형화한 다음 고객 응대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김근수 롯데백화점 AI 팀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데이터 레이크(DATA LAKE)' 체계를 개발하고 있다”면서 “매장서 발생하는 모든 데이터를 놓치지 않고 비즈니스에 활용하겠다는 의지”라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