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규제 문제가 불거지면서 부품·소재 산업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그간 조립·가공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국내 산업생태계에 부품·소재의 중요성을 인지시키는 전환점이 됐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들 부품 소재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진작부터 존재했다. 그것은 이들 분야는 일자리문제가 심각한 우리 사회에서 유용한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품 및 소재 산업은 여타 산업과 달리 종사자 공정 경험과 노하우가 사업 성패를 좌우한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경험과 노하우는 지식재산권 등록으로 보호받기 어려운 영역을 다수 내포한다. 이 때문에 관련 기술을 확보한 기업은 여타 기업이 자사 제품을 바탕으로 역설계(Reverse engineering)해 유사 제품을 만들지 못하도록 제작 과정을 블랙박스화해 진입장벽을 구축한다.
이 때문에 독일과 일본 첨단 부품 및 소재 기업 상당수는 종신고용을 기반으로 자사 현장기술을 계승시키거나 가족기업 형태로 진화·발전해 온 경우가 많다. 최근 일본 수출규제로 크게 주목받은 일본 기업 모리타화학공업, 스텔라 케미파 등도 모두 100년 이상 된 가족기업이다.
해당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축척하게 된 경험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효과는 특허 이상의 진입장벽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경험효과는 흔히 경험곡선효과(Learning Curve Effect)라고도 불리는데, 특정 분야에서 오랫동안 업무를 수행하다보면 관련해서 경험이 쌓이게 되고, 이러한 경험은 업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숙련공을 보유한 회사에서 여타 회사에 비해 더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공급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 숙련공이 불량률을 낮추면서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빠르게 생산하는 노하우를 축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숙련공의 경험이 규모의 경제로 인해 생산비용이 절감되는 효과와 같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사실 장시간에 걸친 경험에 근거한 경제적 효과는 대규모 설비 투자로 인한 규모의 경제보다 더욱 견고하다. 대규모 설비 투자로 획득한 규모의 경제는 신기술 등장과 함께 일순간 소멸될 가능성이 높지만,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획득 가능한 업무 관련 노하우와 경험은 한순간 대체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철강 산업에 있어서 규모의 경제의 원천은 대형 고로에 있다. 이러한 초대형 고로를 만드는 것은 막대한 초기 투자가 유발되고, 이러한 거대 초기 투자 자본은 철강 산업 진출을 주저하게 만드는 진입장벽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기술 개발로 인해 전기로 가열되는 소형 고로가 만들어져 이를 쉽게 대체할 수 있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그렇게 되면 이제 대형 고로는 신규 진출 기업을 막는 진입장벽이 아니라 자신들의 퇴출을 막는 골칫덩이로 전락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려야 축척되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제품과 서비스는 한순간에 흉내 내어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시간이 주는 경험은 가장 막강한 진입장벽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이상에서 설명한 내용은 취업과 창업 혹은 재취업과 창업 사이의 양자택일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사람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할 것이다. 창업이 곧 평생직장이 되는 분야가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창업을 하던 취업을 하던 평생 먹거리를 걱정해야 할 요즘 오랜 경험을 통해 남들이 절대 침범하기 어려운 내제화된 역량을 갖출 수 있는 분야가 부품, 소재 분야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aijen@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