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이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 육성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현장을 찾아 힘을 실어 주고, '국산화'와 '공급망 다변화'가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그동안 정부가 다양한 국책 과제로 소부장 산업을 꾸준히 지원해 왔지만 기업들은 정부의 이 같은 관심이 다시 오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소부장 특별법)이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 부의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 온다. 이미 여러 정부 부처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프로그램디렉터(PD)들이 참여, 100대 핵심 품목 중심으로 세부 과제도 도출하고 있다. 여러 분야의 PD들이 합종연횡해서 기존에 시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과제를 도출하고 있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기대가 모아진다. 중소·중견기업이 대다수인 소부장업계에서는 정부의 이 같은 노력이 반갑다.
그러나 우려도 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가능성 있는 분야에 예산을 집중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만 보면 세부 사업이 어떻게 기획되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추후 과제제안서(RFP)를 공개하고 공청회를 열겠지만 사업 준비 단계에서 기업과의 소통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8월 정부가 100대 핵심 품목을 발표했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은 자사 사업 모델이 포함되는지 여부를 제대로 알지 못해 추가 발표만 기다리고 있다.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과의 소통도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나온다. 정부가 국산화 키워드에 갇혀 공급망 다변화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미래 경쟁력을 갖추는데 핵심 역할을 하는 소부장이라면 후발 주자로라도 뛰어들어 연구개발(R&D)을 시작하는 게 맞지만 모든 분야를 다 할 수 없다”면서 “다 하려는 것도 비효율”이라고 입을 모은다.
산재해 있는 중소·중견기업들의 기술과 힘을 모아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국산화 키워드에만 함몰된 것은 아닌지, 공급망 다변화를 할 수 있는 새로운 협업 가능성은 없는지 계속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