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초기 제품과 회사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탓에 좀처럼 판매가 이어지지 않아 고민하는 창업자들이 많다. 이때 가장 설득력 있는 대안 중 하나가 '선 체험 후 구매' 전략이다. 고객에게 자사 제품을 일정기간 동안 사용하게 한 뒤 구매 여부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 전략은 일견 수많은 반품 문제로 어려움을 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판매한 제품의 품목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은 경우 생각보다 반품으로 인한 손실 내지 문제가 크지 않다는 것이 이를 활용한 기업들의 중론이다.
이는 인지 부조화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인지 부조화의 원리란 미네소타대학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 교수가 1957년 발표한 이론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음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나름의 타당한 근거를 찾아 자신의 선택이 어리석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성향을 의미한다. 레온 페스팅거 교수가 인지 부조화 현상에 처음 주목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보게 된 신문기사 때문이다. 당시 신문 기사 내용은 사이비 교주가 신도들을 속여 대홍수가 곧 들이닥칠 텐데 이때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을 따라야 한다며, 전 재산을 헌납하라고 속인 사기 사건에 대한 기사였다. 당시 레온 페스팅거 교수가 읽은 신문기사는 사기사건 자체에 주목한 내용이 아니라 사기 행각임이 밝혀진 뒤에 신도들이 보인 반응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대홍수가 난다는 운명의 날, 비는 커녕 오히려 날씨가 맑아 사기가 들통 난다. 그런데 정작 황당한 것은 신도들의 반응이었다. 사기를 당한 신도들은 교주를 찾아가 항의하거나 혼쭐을 내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행동을 보인 것이다. 교주가 신도들의 믿음 덕분에 우리가 대홍수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신도들은 교주의 이 말에 오히려 기뻐했던 것이다.
페스팅거 교수는 왜 이러한 황당한 현상이 전개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감행한다. 지원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아주 기초적인 계산 문제를 제시한 뒤 이를 풀게 한다. 너무나도 기초적인 문제들로 어떠한 부가가치도 느끼기 어려운 수준의 문제들을 다수 구성한다. 이를 통해 아주 기초적인 내용에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리고 난 뒤에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사례비를 지급하였다. 그런데 한 그룹에게는 사례비로 1달러를 지급했고, 또 다른 그룹에는 20달러를 지급했다. 그리고 난 뒤 두 실험 참가자들에게 실험에 참가한 것이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물어보는 설문조사를 수행했다.
실험 결과 의외의 결과가 도출됐다. 더 많은 사례비를 지급받은 그룹의 설문조사 결과가 더욱 흡족하게 나올 줄 알았지만 정작 더 높은 만족감을 표시한 그룹은 단돈 1달러만 지급받은 참가자들이었다. 페스팅거 교수는 이러한 실험 결과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실험 참가 후 20달러를 지급받은 지원자들은 자신이 허비한 시간에 대해 이미 금전적인 보상을 충분히 받았다. 즉 자기 자신은 금전적인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멍청한 일에 시간을 소모하지 않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지루하고 의미 없는 실험 내용 그 자체는 편안한 마음으로 얼마든지 비난할 수 있다. 이에 반해 1달러의 사례비만 지급받은 지원자들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이들은 이미 많은 시간을 의미 없는 실험에 허비했음에도 금전적인 보상마저 제대로 받지 못했다. 실험 내용마저 의미 없다고 평가하면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를 은폐하기 위해 실험 내용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실험이었다든가 어떠한 학문적 시사점을 찾기 위한 실험이지 않았겠느냐는 등의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인지부조화 현상은 사전에 커다란 확신을 갖고 있었던 일이 실제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때 종종 유발되기도 하지만, 실패할 확률이 높은 일에 도전할 때도 자주 목격된다. 즉 잘못된 구매일 수 있는 행위를 한 뒤에는 자신이 감수한 위험에 대해 나름의 의미를 찾게 되는 기질도 인지부조화로 설명 가능하다. 지금 반품을 걱정하는 CEO가 있다면 소비자가 가진 인지부조화 심리를 주목하기 바란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aijen@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