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혁명에서 가장 뒤처진 분야로 인식되던 보험 산업에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는 유니콘 기업이 떠오르고 있다. 2015년에 설립된 루트인슈어런스는 자동차 보험업을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혁신한 사례다. 2018년 유니콘 기업에 등극했다. 이 회사를 창업한 앨릭스 팀은 14살 때 보험업에 종사하고 있던 아버지에게 일자리를 요청했다. 아버지는 수학 영재 시험에서 점수를 잘 맞으면 일을 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팀은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보험업에 뛰어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보험회사에 취업했다. 그러나 새로운 보험 상품으로 혁신을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창업의 길로 나섰다.
팀은 AI와 스마트폰을 적극 활용했다. 루트인슈어런스는 자동차 보험을 가입하려는 고객이 AI 기술로 무장된 시험 운전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해 길면 3~4주 동안의 운전을 통해 운전 습관 데이터를 전송하도록 했다. 과속은 어떻게 하는지, 꼬리 물기를 하는지, 운전 중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는지 등 데이터를 수집해 운전 습관을 평가한다. 이는 스마트폰에 있는 자이로스코프 센서, 가속도계 센서 등의 데이터를 AI 알고리즘이 활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실제 운전 사용 습관에 따른 보험료 산정은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이른바 사용 기반 보험료를 자동차에 처음 적용한 것으로, 유명한 사례로 프로그래시브 인슈어런스라는 회사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회사가 이러한 시도를 할 때는 AI나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다. 이 때문에 자동차에 블랙박스를 설치하고 위성항법장치(GPS) 좌표를 수집해서 위험한 곳을 얼마나 다니는지, 지리 기반 통계로 위험을 산정하는 방식이었다.
자동차 사고의 주요 원인은 운전자가 좌우한다는 측면에서 루트인슈어런스는 진정한 의미의 사용자 위험을 직접 및 객관 측정해서 보험료 산정에 과거보다 훨씬 많이 반영했다. 가입자 위험에 상응하는 보험료 책정은 보험회사들의 영원한 숙제이고, 공정한 사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인구 통계 데이터에 의존하던 것에서 벗어났다. 반드시 나이 많은 사람이 청년보다 안전한 운전을 한다는 보장이 없다. 성별·인종·나이에 따른 차별 논란을 줄이고 있다는 점도 보험 산업의 투명성과 신뢰를 높이는 혁신이라 할 수 있다.
루트인슈어런스에 따르면 운전 습관이 좋은 고객 30%는 기존 보험료에 비해 50% 이상 낮은 보험료를 지불하고, 이 회사 가입 고객의 상위 70%도 경쟁 회사에 비해 가장 싼 가격의 보험료를 지급하고 있다. 또 운전자가 운전 중에 문자를 보내는 등의 위험한 스마트폰 활용은 안 하는 것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10%의 추가 할인을 받게 했다. 테슬라자동차의 자동 모드로 운전하는 경우 특별한 할인도 제공한다.
사용자가 보험을 구매하면 90일 정도만 더 보험자의 운전 습관을 추가 수집하고, 사용자는 개인정보 등이 염려될 경우 언제나 앱을 중단할 수 있다. 수집된 데이터는 위험 평가 외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 않는다.
회사는 2015년에 지역의 작은 벤처캐피털로부터 700만달러의 초기 투자를 받고, 실리콘밸리의 한 은행에서 후속 투자를 받으며 급성장했다. 2017년 400만달러의 보험 매출이 2018년 상반기에 2300만달러로 늘었고, 2018년 3분기에 다시 3배 이상 성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세계 금융은 전례 없는 혁신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낮은 금리로 인해 자산 운영 수입이 줄었다. 이전과는 다른 전략으로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전보다 훨씬 정밀한 위험평가 능력과 원가 절감 능력이 요구된다. 영업사원 없는 모바일 보험과 AI로 무장된 보험료 책정이 보험의 새로운 살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을 이루려면 결국 보험회사에 보험료 책정의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루트인슈어런스의 실험이 내비게이션 사용이 가장 보편화된 한국에서 본격 시행되지 못한 원인은 보험감독원의 보험료 규제 때문이다. 한국의 지독한 관치금융의 해체 없이는 보험 혁신, 금융 혁신은 존재할 수 없다.
이병태 KAIST 교수 btlee@business.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