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초 외부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으면 그 뒤부터 투자자로부터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잘못된 평가 지표로 견실한 최고경영자(CEO)가 중도에 하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례로 최근 CEO 평균 재직기간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현상 또한 잘못된 지표 적용 때문이라는 연구가 발표됐다. 해당 연구에서 주목한 지표는 주당순이익(EPS)이다. 주당순이익은 당기순이익을 발행주식 총수로 나누어 도출된다. 이러한 EPS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1주당 기업 활동으로 얻어진 이익이 얼마만큼 돌아가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이를 통해 지난 1년간 올린 수익에 대한 주주 내지 투자자 몫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기회를 제공한다.
많은 주주가 자신의 몫을 가늠할 수 있는 EPS를 통해 CEO의 성과를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물론 CEO의 성과 중에는 주가에 직접적으로 투영되지 않는 부분도 상당하다. 중장기 계획 아래 투자가 진행 중일 경우 오히려 단기간에는 ESP가 떨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PS는 가장 직접적으로 주주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지표일 뿐만 아니라 다른 비재무적 지표들은 논란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EPS는 CEO를 평가하는 대표 잣대로 활용된다.
그런데 EPS 수치를 올리는 방법은 경영성과를 높이는 것 말고도 더 있다. 바로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다. CEO는 회사가 거둔 이익을 주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미명 아래 자사주는 사들이자고 주장할 수 있다. 사실 주주들 역시 CEO의 이러한 생각을 만류할 이유는 별로 없다. 자신들을 위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자사주를 매입하여 소각할 경우, 이는 결국 시중에 유통되는 자사주 총량을 줄이게 된다. 이렇게 전체 주식 수가 줄어들면 결국 EPS 수치가 높아지게 된다. 즉, 자사주 매입은 추가 영업성과 없이도 CEO가 주주 내지 이해관계자들로 하여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만들어 준다. 적어도 EPS 기준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이나 소각으로 인한 EPS 상승은 당시 주식을 보유한 주주와 CEO에게는 좋은 소식일지 모르겠으나 중장기적으로는 회사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이에 부합하는 지속적인 투자가 수반돼야 한다.
따라서 지속적인 투자에 필요한 기초 자금을 사내에 확보해 두는 것은 회사의 중장기 성장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회사의 잉여 자금을 자사주 매입에 활용하여 자금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행위는 회사의 지속적인 혁신 능력 내지 성장 가능성을 저해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결국 중장기적으로는 회사 가치가 손상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CEO 평균 재임기간이 점점 줄어드는 최근 상황을 고려할 때, 장기적 회사 가치보다는 주주들에게 자신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방편으로 단기적 방법인 자사주 매입에 더 관심가질 가능성이 높다. 역량 있는 CEO라 하더라도 이는 마찬가지다. 남다른 성과를 보인 CEO들은 이러한 성과를 계속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진다. 따라서 전과 유사한 수준의 EPS 수치를 유지하려 하고 자사주 매입과 같은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주주들은 EPS 수치가 경영 성과 상승으로 인해 높아진 것인지 아니면 자사주 매입을 통해 높아진 것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주주들조차 회사의 장기 성장역량보다 자신들의 단기적 이익이 더 중요하다. 결국 이들 역시 장기적인 성과보다 단기적인 성과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요 주주들이 자사주 매입으로 인한 EPS 상승을 어떻게 여길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CEO가 회사의 장기적인 성과보다는 단기적인 성과에만 몰입하는 현상을 막는 가장 쉬운 방법은 CEO의 성과평가 방식을 EPS 지표가 아닌 다른 지표를 활용하는 데 있다.
이상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창업 초 외부투자자들과 계약 시 주의해야 할 부분은 자신의 경영 성과를 무엇으로 평가받을 것인지에 대한 합의 또한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aijen@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