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유럽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파리 사클레'에 입성할 한국 인공지능(AI) 기업 유치에 나섰다. 파리 사클레 지역 연구기관, 대학, 기업과 협업해 시너지를 낼 기업을 찾는다.
제레미 에르베 파리 사클레 개발공사(EPA) 매니저와 세드릭 오리악 프랑스원자력청(CEA) 연구원이 한국을 방문했다. 유망 AI 기업을 만나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서울에 머물면서 AI 기업 5곳과 차례로 미팅을 가졌다. 대기업 1곳, 중소기업 1곳, 스타트업 3곳이 포함됐다. 오리악 연구원은 “AI 기술을 실생활에 적용해 산업적 가치를 창출한 기업과 면담했다”면서 “의료 진단과 기업 간 거래(B2B) 사업에 AI 기술을 접목한 스타트업을 눈여겨봤다”고 말했다.
파리 사클레는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세계 8대 혁신클러스터 중 하나다. 매년 창업기업 100여곳이 탄생한다. 유럽 양대 항공 제조사 에어버스와 자동차 회사 르노, 푸조 등이 입주해 있다.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 입센도 둥지를 텄다. 정보통신기술(ICT) 대기업도 즐비하다. 노키아, 후지쯔가 법인을 세웠다. IBM은 연구소를 차렸다. AI 서비스 '왓슨' 개발자가 연구소 총괄 책임자를 맡고 있다. 한국 기업은 한 곳도 없다.
파리 사클레는 전통적으로 대학, 연구기관이 밀집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민간 연구개발 투자 15%가 이곳에서 일어난다. 1930년부터 연구소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현재 320곳이 들어섰다. 경영과 이공계 분야 최상위 교육기관 그랑제꼴 19곳도 몰려있다. 프랑스 정부는 새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50억유로(약 6조4600억원)를 파리 사클레에 투자해 ICT와 의료, 스마트 에너지관리, 항공·보안·방위, 미래형 모빌리티 산업을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2026년까지 공항과 파리 중심부를 쉽게 오갈 수 있도록 철도도 연결한다. 파리 사클레는 실리콘밸리와 달리 국가 주도로 운영된다. 연구기관이 개발 성과를 기업에 이전, 서비스와 기술을 상용화한다.
AI 산업 육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프랑스는 AI를 중점 투자 분야로 선정했다. AI 기술 고도화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관련 법제화 작업도 마쳤다. 미국, 중국보다 먼저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
오리악 연구원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 위치 정보가 구글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 이 때문에 평소 해당 기능을 꺼놓고 생활한다”면서 “개인정보보호법이 당장은 연구개발을 위축시킬 수 있겠지만 사용자 대상 서비스 신뢰도를 향상시키는 장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AI 산업 성장 가능성을 두고는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다수 기업이 AI 기술을 실생활에 접목, 가치를 창출하는 역량을 갖췄다고 진단했다. 에르베 매니저는 “AI 분야 연구개발 투자 규모만 보면 미국, 중국, 일본 세 나라가 가장 많이 앞서 있다”면서 “한국 정부도 최근 AI 투자에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등 이들 나라와 격차를 빠르게 좁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