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정보보호법과 인터넷전문은행법 개정안 처리가 또다시 불발됐다. 24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빅데이터 3법 중 하나인 신용정보보호법은 다음 달 법안소위로 미뤄졌다. 인터넷전문은행 대주주 자격 요건을 완화하는 인터넷전문은행법 개정안은 일부 야당 반발로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개인간(P2P) 금융법으로 알려진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통과했다.
정무위는 이날 오후 비공개로 법안소위를 열고 '신용정보의이용및보호에관한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심사했다.
이날 논의된 신용정보보호법은 빅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보호법) 중 하나다. 김병욱(더불어민주당), 추경호, 송희경(이상 자유한국당), 박선숙(바른미래당), 추혜선(정의당) 의원이 각각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내용을 심사했다. 골자는 데이터를 가공해 금융산업 등에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개인정보 활용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세정보를 활용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당 등 야당은 공공기관이 신용정보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는 법 개정 자체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보완사항이 있다며 의결을 다음 소위로 넘겼다. 차기 소위는 교섭단체 3당 간사 간 합의를 통해 11월 중 열릴 것으로 관측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던 빅데이터 3법의 연내 처리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개정안이 다음 달 정무위 법안소위를 통과해도 정무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심사 및 전체회의를 지나 본회의에 상정되기까지 시간이 촉박하다.
금융업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다만 다음 법안소위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한 만큼 국회가 적극 대응해주길 촉구했다.
한 금융협회 관계자는 “여야 의견이 없는 사안인 만큼, 정쟁을 떠나 조속한 개정이 될 수 있도록 국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해외는 주도적으로 데이터 법제를 정비하는데 한국은 늦은 감이 있다”면서 “이제는 글로벌 데이터 자유유통지대를 위해 세계적인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데이터 3법 개정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선 당장 금융사업 확산은 고사하고 해외시장 개척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고 우려한다. 빅데이터 경제 3법 개정 지연으로 유럽연합(EU) GDPR 적정성 평가에 한국이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릴 위기라는 설명이다.
이 제도는 EU 역외국가가 EU의 개인정보보호수준과 동등한 수준의 정보보호 역량을 갖추었는지 평가·인증(EU집행위원회)하는 제도다. 현재 일본을 비롯 미국, 캐나다, 스위스 등 13개국이 승인을 획득했다.
EU GDPR(일반 개인정보보호법)은 해당 국가가 적정성 평가를 통과한 경우에 한해 EU 거주자의 개인정보 역외 이전을 허용해준다. EU GDPR 전담조직을 운영하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스타트업의 경우, 관련 비용을 부담하기 어려워 사업 포기 또는 축소가 불가피하다.
업계 관계자는 “신정법 개정이 불발되면 제3위 무역파트너인 EU와 거래하는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영업과 성장에도 큰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선 빅데이터 3법 중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을 우선 통과시키는 방안도 거론된다. 개인정보보호법은 행정안전위원회, 정보통신망법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관이다.
야당 관계자는 “빅데이터 3법에 대해선 여야가 모두 4차 산업혁명의 마중물로 통과를 시켜야 한다는데 큰 이견은 없다”면서도 “세부 사항에서 합의가 길어지는 신용정보보호법은 추후 처리하고,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우선 통과시키자는 의견도 여야 간에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인터넷전문은행법 개정안은 일부 야당 의원 반대로 사실상 다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보유 제한) 규제를 완화한 인터넷전문은행법은 정보통신기술(ICT) 주력인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가 인터넷은행의 지분을 보유 한도(4%)를 넘어 34%까지 늘릴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한도를 초과해 지분을 보유하려면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게 했다. 이때 해당 대주주는 최근 5년간 금융관련 법령과 공정거래법, 조세범 처벌법,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등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케이뱅크의 대주주격인 KT는 지분을 34%로 확대하려다가 이 조항에 발목이 잡혔다.
금융소비자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의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안 역시 일부 의원이 이견을 보여 처리되지 않았다. 20대 국회에 계류 중인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안은 총 5개다. 2011년에 최초 발의된 후 10년 가까이 개점휴업 상태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 함지현기자 goh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