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시정연설에서 구체적인 기준이나 방안 제시 없이 갑작스레 정시 확대를 언급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언제 어떻게 정시 비중을 높일지 해석이 다양하게 쏟아지는데다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 해 몇 달 동안 공론화 과정을 거친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교육 거버넌스에 대한 문제제기도 확산됐다.
학부모·학생과 교육계에서는 수능 위주 정시를 확대하는 시점이 2022학년도가 될 것인지 2024학년도가 될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미 2022학년도 입시는 수능 위주 전형 30% 이상으로 권고된 상태다.
문 대통령의 정시 확대 언급 이후 '이상'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춰 30%보다 더 큰 수치를 대학이 낼 수 있도록 할 것인지, 4년 예고제에 맞춰 2024학년도에 수치를 제시할 것인지 해석이 엇갈린다. 혼란이 커진 상황에서 교육부는 어떠한 답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서유미 교육부 차관보는 “충분한 논의를 통해 믿을 만한 정보, 정책 형태로 부총리가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혼란은 정부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김진경 의장은 공론화를 뒤집는 결정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김진경 의장은 23일 경기도 킨텍스에서 열린 '한-OECD 국제교육컨퍼런스'에서 “작년에 공론화를 통해서 2022학년도 대입은 30%이상 하자고 했는데, 그 범주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그 안에서 이해관계를 조정하자는 의미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몇 달간 준비한 중장기 교육비전을 이날 소개했으나 정작 대입 개선안에 대해서는 제대로 언급하지 못했다.
김 의장은 '2030 미래교육체제의 방향과 주요 정책의제'를 발표했다. 국가교육회의를 비롯한 교육관련 기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 만든 안이다. 미래 교육체제 의제 중 하나로 대입 개선안을 넣고, 예시도 마련했다. 하지만 김 의장은 발표 도중 대입 개선안은 프레젠테이션 자료만 보여줄 뿐 설명은 않겠다면서 넘어갔다. 예시에는 수능을 미래 역량 측정이 가능한 서·논술형으로 전환할 것과 학생과 대학이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제시했다.
이후 기자회견에서 김진경 의장은 학종(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 모두 공정하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미국 제도를 모델로 한 학종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이유는 미국처럼 지역 학부모가 평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제도도 없고 학종의 내실을 채우기에는 고교 교육과정이 다양화되어 있지도 못하다”고 설명했다.
수능도 5지 선다에 외우기식이 되면서 불신이 커졌다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에서는 수능만으로 좋은 학생들을 뽑지 못한다는 불신이 있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수능 문항을 미래 역량을 측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면서 “학종이든 수능이든 단기적으로 해결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성명서를 내고 문 대통령의 '정시비중 상향' 시정연설에 우려를 표했다. 협의회는 교육부가 학교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이유로 정시확대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해 놓고, 일부 대학에 대해 정시 비율을 확대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김승환 회장은 “정부의 갈지자 정책이 혼란만 키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오는 25일 청와대에서 교육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할 예정이다. 교육만을 주제로 한 교육관계장관회의는 처음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외에 다른 참석자는 조율 중인 것으로 안다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 발표를 앞두고 각 부처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