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자회사 IDQ와 함께 유럽과 미국에서 대규모 양자암호통신 네트워크 구축 사업을 수주한 것은 지난 8년간 노력의 결실이다.
SK텔레콤은 아무도 양자산업에 관심이 없던 시기 지속 투자를 통해 '통신은 해외 진출이 힘들다'는 편견을 깨고 글로벌 양자암호통신 시장을 선도하게 됐다. 하지만 미국, 중국에 이어 유럽까지 양자 경쟁에 뛰어든 상황에서 한국 경쟁력 강화 방안 마련이 시급한 과제다.
◇8년 만에 이룬 쾌거
SK텔레콤이 IDQ와 함께 유럽과 미국에 구축하는 양자암호통신 네트워크는 2200㎞다. 유럽연합(EU)이 추진하는 '오픈 양자키분배(오픈 QKD) 프로젝트'에 14개 구간 1400㎞를 구축하고, 미국에서는 퀀텀엑스체인지와 협력해 워싱턴 D.C.~보스턴을 잇는 800㎞ 구간을 구축한다.
2016년 중국이 베이징~상하이를 잇는 2000㎞ 양자암호통신 백본망을 완공한 이후 최대 규모 사업을 국내 기업이 주도하는 것이다.
양자 시장이 열리기 시작한 점도 고무적이다. EU는 향후 10년간 1억유로(약 1조3000억원)를 투자한다. 퀀텀엑스체인지는 800㎞ 양자암호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양자암호키 임대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양자산업 구호가 '비전에서 기술로'였다면 이제는 '기술에서 사업으로'가 시작된다는 의미다.
EU 오픈 QKD 프로젝트가 1500만달러(약 200억원) 규모임을 감안하면 SK텔레콤이 당장 큰 수익 확보는 어렵다. 그러나 유럽 최대 시험용, 미국 최초 상업용 양자 네트워크 프로젝트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앞으로 열릴 양자정보통신 시장에서 'SKT 퀀텀' 브랜드 이미지 제고 효과가 기대된다.
SK텔레콤이 해외 사업에서 성과를 낸 것 자체도 의미가 있다. 국내 통신 사업자는 산업 특성상 내수시장을 벗어나기 어렵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해외 시장 문을 두드렸지만 뚜렷한 성공 사례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SK텔레콤은 2011년부터 양자기술 개발에 투자해 8년 만에 유럽 시장 선점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더욱 의미가 큰 것은 단순히 IDQ 원천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SK텔레콤 이동통신 기술을 적극 접목했다는 점이다. 양자암호통신망이 끊길 때를 대비한 양자암호키 스위칭·라우팅 기술은 양사가 공동 개발한 것이다.
◇유럽 발 '양자전쟁' 서막 오르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 퀀텀 플래그십 콘퍼런스'는 양자기술 가능성을 확신하고 기술과 산업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EU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을 목격한 자리였다.
양자암호통신은 단일광자 편광현상을 이용해 비트(0, 1)를 전송하고, 양자역학 원리에 의해 중간에서 이 정보를 가로채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한 암호 기술이다. 한편 현행 사이버 암호 체계는 소인수분해의 난해성에 의존하는데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 몇 분 만에 뚫릴 것이라는 경고가 제기된다. 즉 양자컴퓨터가 창이라면 양자암호통신은 방패인 셈이다. EU는 이 같은 양자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산하기관 '퀀텀 플래그십'을 신설하고 10억유로 투자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오시 맘버그 핀란드 아카데미 부원장은 환영사에서 “양자 산업에서 리더십을 유지하고 강화하겠다는 '분명한 야심(ambition)'을 실현하기 위해 퀀텀 플래그십을 신설했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해 참가자들을 놀라게 했다.
카릴 로하나 EC 통신네트워크기술 책임자는 기조연설에서 “유럽이 양자역학의 모든 것을 연구했는데 정작 사업화는 다른 곳에서 한다”면서 “유럽이 퍼스트무버로 양자암호통신을 적용하고 의료, 신약개발, 시뮬레이터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 기술 개발에 전 EU 회원국이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이 시작한 양자 기술개발 전쟁에 EU마저 참전을 선언하면서 한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한국은 정부 주도로 5000억원 규모 양자 국책과제를 추진했지만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 반대파에 막혀 2017년 최종 무산됐다.
한국의 양자산업을 살리려는 노력이 이어지는 점은 다행스럽다. 김성태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은 지난 16일 양자산업 진흥을 위한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ICT 특별법)'을 대표발의했다.
특별법은 정보통신기술 정의에 '양자응용기술'을 추가해 법적 지원근거를 만들었다. 이 법안 발의에는 여야 30여명 의원이 참여해 통과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헬싱키(핀란드)=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