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재계가 내년 사업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 중동 정세 불안, 보호무역기조 확대 등 대내외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환율, 금리, 유가 등 주요 경제 지표도 불확실한 상황이어서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사업계획 확정이 예년보다 늦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그룹들이 내년 사업계획 수립 작업을 진행 중이다. 통상 계열사별로 사업계획을 마련하고, 연말 그룹 차원에서 계획을 공유한다.
이미 그룹 차원 전략회의를 시작한 곳들도 있다. SK그룹은 지난 16일부터 사흘간 CEO 세미나를 열고 계열사 내년 경영전략을 점검했다. LG그룹은 21일부터 핵심 전략회의인 사업보고회에 돌입한다.
5대 그룹이 일제히 사업전략을 수립 중이지만 어느 때보다 고심이 깊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영환경을 예측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는 미·중 무역분쟁은 대외 불확실성을 크게 높였다. 환율 변동성이 커졌고 양국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그룹은 '눈치싸움'까지 벌여야 하는 실정이다.
불안정한 중동 정세와 한일 갈등도 변수다. 중동 정세 변동성이 커지면서 유가 급등 우려가 커졌다. 산업계를 강타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국내 기업은 공급망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의 대중국 수출비중이 높은 만큼 세심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국내 변수도 많다. 우선 경기 전망이 불안하다.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대에 그칠 것이란 비관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경제가 둔화되는 가운데 주 52시간 근무제가 내년 1월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된다. 최저임금 상승 등의 이슈도 고려해야 한다.
'오너 리스크' 역시 뇌관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달 25일 파기환송심을 앞두고 있다. 재판 결과는 삼성그룹과 재계 전반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대내외 경영환경이 불안한 상황에도 국내 5대 그룹은 내년 공격적 투자에 나설 계획을 밝혔다. 불확실성이 크지만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2025년까지 전기차, 수소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모빌리티 사업에 41조원을 투입한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강조하는 '행복 경영'을 기반으로 신산업 투자에 나설 전망이다. LG그룹은 비주력 사업 매각과 해외생산거점 확대로 신사업 중심 경영체제 정립에 속도를 낸다. 신동빈 회장 리스크에서 자유로워진 롯데그룹은 대대적인 인수합병(M&A)으로 온라인 유통 경쟁력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대내외 변수가 많아 주요 그룹들이 올해 사업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올해는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면서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사업계획이나 경영지표를 참고해 전략을 짜는 경우가 많은데, 대기업마저 사업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재계 전반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