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통신판매중개업자 역할과 전자상거래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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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애플 앱스토어와 관련한 미국 집단소송에서 흥미로운 판결이 나왔다. 미국 대법원은 애플을 상대로 아이폰 이용자가 소송을 제기한 건에서 아이폰 이용자도 애플의 직접 구매자로서 미국 독점금지법 위반을 이유로 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자세한 사실 관계는 다음과 같다. 2011년 아이폰 이용자는 애플 앱스토어에서 30%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이 애플의 독점 지위를 부당하게 남용한 것이고, 그로 인해 인상된 가격이 소비자에게 전가됐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애플은 앱스토어는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자와 소비자를 중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므로 앱을 구입하는 소비자는 앱스토어의 직접 구매자가 아니며, 이에 따라서 아이폰 이용자가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인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은 중개 역할을 할 뿐이라는 애플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항소법원에서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앱 개발자뿐만 아니라 소비자도 직접 구매자라는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도 항소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수용했다.

아직 독점금지법 위반 여부에 대한 판결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앱스토어는 중개 역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소비자를 판매 대상으로 볼 수 있다는 판결의 취지는 시장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지난 16일 이베이코리아의 도서정가제 준수 의무와 관련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베이코리아가 도서정가제를 준수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 원심은 이베이코리아는 통신판매중개업자이기 때문에 출판문화산업진흥법상 의무를 지고 있지 않으며, 과태료 부과 대상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 결정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즉 이베이코리아도 도서의 최종 판매가격을 결정할 수 있고, 그에 따른 경제 이익을 얻기 때문에 도서정가제를 준수할 의무가 있는 간행물 판매자에게 포함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련의 판결은 시장에서 통신판매중개업자 역할과 지위가 상당히 달라졌고, 이를 바라보는 소비자 시선과 기대가 바뀌었음을 매우 시의적절하게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픈마켓과 같은 통신판매중개업은 원래 작고 영세한 통신판매업자를 한데 모아서 소비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선택권을 다양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전자상거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통신판매중개업자가 입점 공간만 제공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거래에도 상당 부분 관여할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높은 인지도를 누리면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소비자는 대체로 영세한 개개의 판매업자보다 통신판매중개업자 신용도 및 효율 시스템과 신뢰할 만한 서비스를 믿고 거래한다.

한편 정작 문제가 생겼을 때 통신판매중개업자가 져야 할 법정 의무와 책임은 소비자 신뢰에 부응하기에는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물론 많은 대형 오픈마켓 등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고객 대응 매뉴얼을 갖추고 고객 만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통신판매중개업자는 '저는 거래 당사자가 아니니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판매업체와 직접 이야기해 보세요'라는 말로 소비자 불만과 요구를 회피하고 있다. 소비자는 실제 거래한 판매업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사이트에 들어가서 상품 정보 어딘가에 적혀 있는 업체명과 연락처를 찾아내 연락을 시도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소비자가 배신감을 느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쇼핑에서 파는 핸드백이 설마 짝퉁이겠어?' 하며 거액을 내고 구입했는데 정말 짝퉁이었을 때, 심지어 판매업체는 연락이 안 되고 통신판매중개업자는 판매업자 잘못일 뿐이라며 모른 척할 때 이러한 배신감은 분노로 돌변한다. 그렇지만 현행 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법으로는 통신판매중개업자가 판매업자의 짝퉁 판매를 계속 내버려 둔다고 하더라도 제재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마땅치 않다.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지난달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법 일부개정안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개정안 내용 가운데에는 통신판매중개업자에 거래 당사자가 아니라는 고지 외에도 실거래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소비자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함께 고지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미인증 의약품이나 세균이 검출된 식품, 짝퉁 제품 등 판매로 소비자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위해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통신판매중개업자에 소비자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이행하도록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러한 안전장치가 도입되면 소비자는 좀 더 안심하고 전자상거래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무쪼록 이번 개정안이 신속히 국회를 통과해서 전자상거래 시장이 소비자 신뢰를 얻어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송상민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책국장 zlassong@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