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놀 권리와 쉴 권리가 지켜지지 않아요. 놀이터는 저학년만 쓰고 음악을 듣고 싶어도 학교에서는 못해요.”
“불평만 해서는 바뀌지 않아. 너희들이 직접 학교를 바꿔볼래?”
구미봉곡초등학교 공간혁신의 출발점은 5학년 1학기 '인권'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 수업이다.
사회·국어·도덕·미술·창의적체험 교과를 재구성한 프로젝트 학습으로, 사회·도덕 교과의 '인권과 정의로운 사회', 국어의 토의, 미술의 아이디어 표현 등을 담았다.
학생은 학습을 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 기획하는 기회를 가졌다. 1학기 동안 2~3인이 모둠이 돼 계획서를 쓰고 모형을 제작했다. 시간은 공청회, 공간은 공간혁신 메이커페어에서 구체화됐다. 이 과정은 '생각'에서 끝나지 않았다. 올 겨울 방학이면 교육청 예산지원을 받아 공간 혁신 사업에 착수한다.
정부·지자체 또는 교육청 사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학생이 내놓은 아이디어와 교육과정 자체가 공간혁신 단초가 된 것. 2학기부터는 5·6학년 학생이 직접 놀이공간과 1·6학년 교실 설계에 참여한다.
지난 17일 기자가 참관한 오전 5학년 동아리 수업은 공간혁신촉진자(퍼실리테이터)가 학생들이 어떤 공간을 원하는지 구체화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디자인은 그냥 그림과 달라요. 조사를 해야 하고, 이유가 있어서 만든 그림이에요. 오늘은 '이유'를 만들어 보는 과정이에요.”
촉진자를 맡은 아타플래닝 이준희 대표가 2학기 동안 매주 1시간씩 5학년 학생 18명을 만나 이들이 설계할 '놀이공간'의 이유를 부여한다. 이 대표는 학생들에게 “혼자 쓰는 게 아니니까 어떤 주장이든 의논을 해서 결정해야 한다”며 대화를 끌어냈다.
이날 동아리 시간에는 학생들이 대표성을 띄는 가상의 주인공을 만들어, 주인공에게 필요한 공간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여학생이 주인공이 되어야 할지, 남학생이 되어야 할지부터 의논한다. 학생들의 단순한 주장에 촉진자는 '이유'를 만들어보라고 제안한다. 놀이기구는 남학생이 더 잘 이용하니 남학생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세심한 성격의 여학생이 주인공이 되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온다. 학생들은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까지 이처럼 '이유'만드는 작업을 계속한다. 이 과정을 바탕으로 올 겨울에 설계와 공사에 착수한다.
정재환 구미봉곡초 교사(연구부장)는 “나만의 요구가 아니라 다른 사람 요구도 받아서 설계해 보는 것에 초점을 뒀다”면서 “허황된 것도 받아들인 후 제약이 되는 여건을 공론화시켜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혁신학교나 프로젝트 수업이 드문 대구·경북 지역은 이제 갓 공간혁신이 싹트고 있는 지역이다. 구미봉곡초의 사용자 참여 공간혁신 사업 결과물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구 비슬고는 고교학점제를 위해 공간을 조성한 사례다. 2017년 개교한 학교는 공간 운용에 여유가 많다. 고교학점제를 배려한 학교답게 넓직한 복도와 다양한 크기의 교실이 특징이다. 그네를 타면서 책을 읽는 '공간엉뚱', 요가매트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거나 쉴 수 있는 '멍때리기실', 토론을 하며 공부할 수 있는 '예시바룸' 등 학교 곳곳에 다양한 공간이 존재한다.
수십만원 수준의 적은 예산으로 공간을 만들어 주목을 받는다. 일반 교실의 절반 크기 교실, 1.5배 교실 등 다양한 공간으로 제약을 줄이고 학생 선택권을 넓혔다. 과목에 따라 다양한 교실 공간으로 이동하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돈다.
쉬는 시간에는 곳곳에 있는 틈새 공간에서 책이나 잡지를 보고 친구와 토론을 할 수도 있다. 햇볕을 쬐며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선베드는 가장 인기가 많은 공간이다.
이 학교 수업혁신부장인 문웅렬 교사는 “자기주도학습을 위한 다양한 지원 공간을 마련했다”면서 “큰 예산이 없어도 관심과 열정이 있다면 학생들이 학교에서 즐겁게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동기획>한국교육녹색환경연구원·전자신문
구미·대구=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