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고려대 로봇융합관에 위치한 도락주 교수의 연구실. 도 교수와 20·30대 청년이 한창 회의 중이었다. 도 대표와 청년들은 모니터 속 3차원(3D) 화면을 보면서 기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회의에 참여한 이들의 소속은 달랐다. 일부는 고려대 로봇공학 대학원생, 나머지는 3D 실감 실내 지도 전문기업 '티랩스' 직원이다. 학생과 직장인이라는 다소 생소한 조합이지만 공통점은 도 교수였다.
도 교수는 스타트업 티랩스 대표다.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였던 도 대표는 2017년 3월 3D 공간을 현실 그대로 스캔하는 '가상현실(VR) 공간 지도' 모델링 전문 기업인 티랩스를 창업했다.
도 교수는 어느 날 '현실 공간을 스캔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이를 기술로 실현했다. 티랩스는 도 교수가 20년간 개발한 'TeeVR' 기술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TeeVR는 어디서나 보고 싶은 지점에서 풀3D로 VR 공간 지도를 볼 수 있고, VR 공간 지도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다. 공간 스캐너 역할을 하는 자율 주행 로봇 '티스캐너'가 공간을 촬영해 공간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를 인공지능(AI) 서버 컴퓨터에 입력하면 자동으로 공간 지도가 작성된다. 지도에 이미지를 결합시키면 실제 공간을 그대로 구현한 실감 실내 지도가 완성된다.
티랩스는 교수 창업인 만큼 대학과 기업의 융합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고려대 로봇공학과 대학원생과 티랩스 직원은 일주일 2~3회 회의를 한다. 이를 통해 대학원생은 학문적 연구를 넘어 산업이 원하는 기술을 접할 수 있다. 학문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효과를 얻는다. 티랩스 직원은 산업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현실적 기술을 대학원생에게 요구한다. 교류를 통해 양측은 새로운 발전된 기술을 얻는다.
고려대 로봇공학 박사과정 중인 임가현 씨는 “티랩스와 교류하면서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 뿐 아니라 산업체에서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경험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티랩스 직원인 장범철 씨는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 있으면 대학원생과의 회의한다”며 “전문 기술에 대한 고급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도 교수 또한 기업을 운영하면서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도 교수는 “기술이 인간의 어떤 욕구를 만족 시켜야 하는지,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줘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창업을 시작한 뒤 기술 개발뿐 아니라 시장에 어떻게 진입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기술과 산업을 동시에 바라보게 됐다고 전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와 회사 수장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쉽지만 않았다. 도 교수는 “지난해까지 학생도 가르치고, 기업도 운영하느라 정말 정신없이 지냈다”라며 웃었다. 그는 강의와 기업운영을 병행하다 지난해 말부터 공과대학에서 융합연구원으로 소속이 바뀌면서 강의를 면제받았다. 이제 기업 운영과 기술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다.
고려대 융합연구원은 기술력 있는 교수 창업도 융·복합 연구에 속한다고 판단, 도 교수 영입을 추진했다. 융합연구원 소속 교원은 강의를 면제받는다. 도 교수는 교수 창업으로 수업을 면제받은 고려대 1호 교수다.
그는 교수 창업이 쉽지 않지만 아주 큰 경쟁력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교수는 연구를 통해 독보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아 교수창업을 통해 탄탄한 기술이 산업으로 흘러가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도 교수는 TeeVR를 개발해 미국, 일본 등 주요국 특허 출원 및 등록을 완료했다. TeeVR는 VR 기술 한계를 극복한 원천 기술이다. 현재 상용화된 360도 VR는 카메라가 촬영한 지점에서만 감상이 가능하고 카메라를 벗어난 지점으로는 이동할 수 없어 다소 답답하지만 TeeVR 기술은 VR 공간 어느 지점으로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도 교수는 “국내 많은 교수가 독보적인 기술을 개발하지만 논문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교수창업이 활발해져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