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7주년:기술독립선언III]박천홍 기계연 원장 "공급기지형 R&D센터가 기술 자립 원동력될 것"

“일본에서 기술자립을 이뤄내려면 일본과 같아서는 불가능합니다. 이전에 없던, 일본이 전문성을 가지지 않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박천홍 한국기계연구원장은 일본을 극복할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고 봤다. 일본 고베대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딴 그는 과거 일본 TV가 사향길로 접어든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과거 진공관을 사용한 일본 TV는 세계를 제패했던 1등 제품이었으나 기술 대세가 LCD로 바뀌면서 우리나라가 치고 나갈 기회가 생겼다는 내용이다.

박 원장은 “TV 기술 추세가 패널로 바뀌지 않았다면 우리는 높은 수준 숙련공을 보유한 일본을 절대 이길 수 없었을 것”이라며 “패러다임 전환이 곧 우리가 일본을 극복하고 끝내는 따돌리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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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홍 한국기계연구원 원장

그는 “기계 분야는 특히 더 그렇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며 '병기학'이 20세기 초반 주요 학문으로 거듭났고, 이것이 정밀기계공학으로 발전했습니다. 긴 시간동안 기계 분야 발전을 거듭했어요. 새로운 패러다임 구현이 아닌, 일본의 길을 답습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격차를 줄일 수 없습니다.”

그의 생각은 단호했다. 기계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현하려면, 기계연이 '출연연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출연연이 기업이 할 수 없는 장기간 연구를 지속하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기술과 인력네트워크가 성장할 수 있도록 밑거름 역할을 할 때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과거 출연연이 처음 출범했을 때부터 이어진 역할이자 향후 기술 자립의 해법”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이런 역할이 근래 어지러운 국제 정세에 특히 중요하고 요긴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일본 수출규제 문제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도 갈등을 빚는 등 세계 곳곳에서 보호무역주의가 팽배한 상황”이라며 “다양한 주력 산업 분야에서 기술 국산화, 기술 독립을 이루지 못하면 현 상황을 이겨내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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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홍 한국기계연구원 원장

박 원장은 “현 상황을 이겨낼 핵심 전력 마련이 시급하다”면서 “현재 기계연이 구축을 추진 중인 '공급기지형 R&D 센터'가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기지형 R&D 센터는 출연연의 역할 그대로를 구체화한 곳이다. 기계연이 주력하는 기계 분야 연구활동 전면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공급한다.

물론 이전보다 강화된 부분이 크다. 과거 힘들었던 고난도 기술 개발에 힘쓴다. 기계연을 비롯한 산학연 참여로, 공작기계 핵심 부품이자 일본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수치제어장치(CNC)'를 첫 개발 대상으로 삼는다. 우선 국산 CNC 시스템을 실증하고, 내년부터는 '차세대 CNC' 개발을 본격화한다. 이후에도 '터보 분자 펌프'를 비롯한 첨단 고난도 기술 필요 분야를 다루면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한다.

기계연은 공급기지형 R&D 센터를 활용해 이전보다 더 많은 기업이 창출 기술을 활용하는 기반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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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홍 한국기계연구원 원장

공급기지형 R&D 센터는 공공 R&D 센터 성격을 띤다. 과거 민간업체 중심으로 기술개발이 이뤄져 기술 공유가 안 됐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일부 기업만 잘나가던 과거에서 벗어나 모두가 일정 수준 이익을 공유하게 되는 '생태계'를 구현할 수 있게 된다.

박 원장은 “공급기지형 R&D 센터는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며 “기존 폐쇄형이 아닌 개방형으로 생태계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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