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기계 국산화 작업을 추진한 가운데 산업 자립률을 높이면서 수입 다변화도 소홀해선 안된다는 제언이 나온다. 정부도 1990년대부터 공작기계 수치제어장치(CNC) 국산화를 추진했지만 제품 상용화에 실패한 만큼 기존 정부 연구개발(R&D) 실패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기계산업핵심기술개발사업(제조장비실증) 공작기계용 국산 CNC 시스템 개발 과제'와 '제조장비시스템 스마트 제어기 기술개발 사업'에 돌입했다. 공작기계용 국산 CNC 시스템 개발 과제는 내년 6월까지 국산 CNC 기술을 제조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실증하고, 신뢰성 테스트까지 진행한다. 제조장비시스템 스마트 제어기 기술개발 사업은 2024년까지 제조사에 상관없이 호환하는 CNC를 개발한다는 목표를 담았다.
전문가는 공작기계 핵심 부품인 CNC 국산화가 성공하면 우리나라 기계 산업 경쟁력이 근본적으로 향상될 것으로 기대했다. CNC는 공작기계 등 제조장비 기능을 제어하는 부품으로, 기계를 제어하는 두뇌 역할을 담당한다. 제조장비 성능과 제조장비를 사용해 생산하는 제품의 부가가치·생산성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부품이다. 많게는 공작기계 비용의 30%까지 차지한다.
지성철 단국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장비나 공작기계 포함해서 생산장비 설계 기술력은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춘 것으로 파악되지만 CNC 등 핵심 부품은 외산을 쓰고 있다”며 “모두 다 국산화를 할 수는 없지만 대체가 가능하면 대체가 가능한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 교수는 이어 “CNC는 구동장치와 제어기, 구동 솔루션까지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가 모두 다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만의 제어 SW가 있어야 한다”며 “일본이나 독일 모두 CNC SW 기술을 공개하는 것에 폐쇄적이다. 독일이나 일본 CNC 제품을 수용한 상태에서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제대로 구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CNC가 국산화하기 만만치 않은 품목이므로 수입 다변화도 동시에 실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 R&D를 통한 기계산업 핵심인 CNC 국산화 시도는 1990년대부터 이뤄졌지만 현재 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CNC를 개발하기 위해 △CNC 개발(1995∼1999년) △IT 기반 나노제어기 개발(2002∼2007년) △다계통 e-CNC 모듈 개발(2005∼2009년) 등 사업을 추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현재 '중소형 공작기계용 2계통 제어 CNC와 서보, 스핀들 구동 유닛 국산화 기술개발(2016∼2020년)' 사업과 '공작기계용 지능형 HMI 플랫폼 및 핵심 운용모듈 개발(2016∼2020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작기계용 국산 CNC 시스템 개발사업(2019∼2020년)'과 '제조산업시스템 스마트제어기 기술개발사업(2020∼2024년)'도 돌입한다.
심풍수 한양대 교수는 “우리나라 세계 10위권 공작기계 생산국인데 국산 제품을 써서 세계 10위권으로 갈려면 10∼20년 걸릴 것”이라며 “결국 기술 개발을 하더라도 제품으로 팔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CNC에서 당장 문제가 되는 분야는 대체를 해야 하지만 국산화만 바라보면 공작기계를 생산 못하고 10년간 (산업이) 죽어버릴 수 있다”고 밝혔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