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81>혁신 틸트

틸트(Tilt). 영상 촬영 때 카메라를 위치는 고정시킨 채 위쪽 또는 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영화 '스타워즈' 1편의 틸트 샷은 유명하다. 화면은 검은 공간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흐릿한 흰색 점 하나가 화면 밑에서 위로 올라간다. 이어 좀 더 큰 옅은색 반구가 따라 올라온다. 그리고 화면이 더 밑으로 내려가면서 목성의 불그스름한 대기를 연상시키는 큰 행성이 화면 가득 드러난다. 그 위로 작은 우주선 하나가 지나가고, 그 뒤로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화면을 꽉 채우듯 큰 우주전함이 쫒아간다. 틸트가 만든 이 움직임에 관객은 금방 빠져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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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그동안 가장 많이 언급된 우리 기업 사례는 무엇일까. 그 가운데 하나는 분명 현대자동차의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미국 자동차 시장은 얼어붙는다. 기업들은 앞다투어 가격 할인을 내놓는다. 현대는 다른 생각을 한다. 일종의 풋옵션을 건다. 직장을 잃으면 차를 돌려주면 된다는 것이다.

결과는 우리 모두 안다. 2019년 1월 시작하자 판매 실적은 미국 자동차 판매가 37% 급감한 와중에도 거의 두 배가 된다. 그해 현대는 딜러가 4배나 많은 크라이슬러를 앞지른다.

'스타워즈'의 틸트 샷처럼 황홀한 스토리다. 이런 사례는 더 있다. 브리타가 내놓은 가정용 정수기는 혁신 제품이다. 투명한 용기에 필더를 끼우고 물을 부으면 그만이다.

백화점 주방용품 매장에 진열했다. 거창한 다른 정수기와 비교해 보니 정수용기에 가까워 보였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왠지 이 코너에서는 어색하고 허술해 보인다. 판매는 기대에 못미쳤다. 대형마트에선 생수코너에 진열하기로 해봤다. 소비자들은 다른 정수기 대신 생수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1리터에 얼마나 들까' 계산해 본 소비자들은 눈이 번쩍 뜨였다.

차이는 카메라 앵글이었다. 카메라는 항상 제품을 비추기 마련이다. 소비자는 영상을 보는 사람일 뿐이다. 카메라는 소비자에게 다가서지 않는다. 반면에 현대자동차는 앵글을 고객에 맞춘다. 그리고 그들 마음속의 불안감을 본다. 어슈어런스는 그렇게 나왔다. 브리타도 마찬가지다. 깨끗한 물을 원하지만 생수비용은 만만치 않다. 브리타는 2리터 생수병 옆에서 질문을 던진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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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미국 경제학자 하비 레이번슈타인의 이론 가운데 'X-효율성 가설'이란 것이 있다. 대부분 기업은 어떤 이유라 하더라도 최대 효율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처럼 고정된 앵글로 얻을 수 있는 감흥에도 한계가 있다.

이제 한번 상상해 보자. 만일 당신이 탄산수 제조기를 만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디자인도 미려하고 기능도 그만이다. 남은 일은 이 제품의 가치를 찍어 내는 것이다. 브리타라면 어떻게 했을까. 백화점 주방가전 코너를 택했을까, 차가운 탄산수 한 잔을 꿈꾸며 소비자가 찾아올 생수 코너의 탄산수 옆에 두었을까.

많은 기업은 여전히 제품에 앵글을 맞춘다. 그러나 현대 어슈런스의 성공을 보며 한 경영 구루는 “현대는 자동차라는 제품을 혁신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고객에게 어필해야 하는지는 혁신했다”라고 평했다.

이제 한번 생각해 보자. 그동안 제품에 고정된 채 방치해 둔 것은 아닌지. 고객에 초점을 맞춘 작은 변화란 없을지, 거기에 작지 않은 작은 혁신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혁신 틸트가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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