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2심 판결을 파기 환송하면서 삼성이 다시 불확실성 속에 갇히게 됐다. 일본의 경제보복, 미중 무역분쟁, 글로벌 보호무역 강화, 반도체 경기 부진 등 대내외 악재가 가득한 가운데 '총수 부재' 상황까지 재현될 위기다. 이 부회장 중심으로 추진하던 미래 사업 준비와 혁신, 비상경영 등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용 부회장 2심 재판을 파기환송하면서 삼성 경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삼성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많은 대내외 불확실성 속에서 총수 부재 가능성이라는 커다란 불확실성까지 더하게 됐다. 2심 재판을 다시 받고, 형이 확정될 때까지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파기환송심은 짧으면 2개월, 길면 6개월가량 걸린다. 하지만 재상고로 대법원 판결을 다시 받을 경우 최종 판결까지 약 1년 정도 걸릴 전망이다.
현재 삼성은 내외부에 악재가 가득하다. 삼성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경기 부진에 따른 실적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인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사업 전반에 위기가 고조됐다. 미중 무역분쟁과 보호무역 기조 강화로 세계 곳곳에서 관세 인상 요구 등이 잇달아 나오는 것도 부담이다.
경영 외적으로도 어려움이 산적해 있다. 특히 2016년 국정농단 의혹 사건이 시작된 이후 3년여 동안 삼성은 지속적인 수사로 인해 리더십 붕괴와 내부 사기 추락 등의 문제가 생겼다. 수차례에 걸친 압수수색, 관계자 소환, 미래전략실 해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 등이 이어졌다. 때문에 삼성 내부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바깥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이례적으로 대법원 판결 직후 입장문을 낸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3년간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으나,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반성과 함께 기회를 달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 2심 재판을 다시 거쳐야하지만, 삼성으로서는 이 부회장 부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뇌물 인정액수가 크게 늘어난 만큼 다시 실형을 받을 수도 있어서다.
이 부회장의 거취는 삼성의 현안 대응 능력과 속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번에 일본의 경제보복 대응과정에서 보여준 이 부회장 역할이 대표적이다. 이 부회장은 일본 현지를 방문해 대형 은행, 소재부품 거래선 등과 논의하며 피해 최소화 방안을 마련했다. 또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주요 사업장을 잇달아 방문해 자칫 동요할 수 있는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핵심 사업 현황과 미래 전략을 점검했다. 이 부회장은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현장경영을 이어가며 본연의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장기적인 미래전략 추진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국내 인수합병(M&A) 사상 최고액으로 미국 전장부품업체 하만을 인수하는 등 활발한 투자와 M&A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해왔다. 사물인터넷(IoT)과 핀테크, 인공지능(AI) 등 현재 주력사업에서 활용하는 기술도 스마트싱스, 루프페이, 비브랩스 등을 인수하면서 빠르게 기술을 확보했다.
하지만 총수인 이 부회장이 자리를 비우면 대규모 M&A나 투자에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소규모 투자나 M&A는 총수가 관여하지 않아도 이어갈 수 있다”면서도 “다만 그룹 차원의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한 대규모 투자나 M&A는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