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가 이뤄진 다음날인 29일 일본 정부를 향해 '정직'이라는 가치를 꺼내들며 책임을 되물었다. 우리 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선언 이후 일본은 물론 미국 정부까지 잇따라 우려와 실망을 표명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일(對日) 비판 수위를 낮추지 않았다. 앞서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일본에 유화적 메시지를 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간 일본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던 '대화 촉구' 내용도 없었다.
이날 임시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대단히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과거사 문제'를 경제와 연계시키고 있는 것은 물론 지난 과거사를 대하는 태도도 정직하지 못하다고 비난했다. 이번 한일 갈등은 결국 일본의 주장처럼 과거사에서 기인한 만큼,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만이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미래지향적 협력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정직'의 가치를 내세운 것이다.
문 대통령은 “가해자가 일본이라는 건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전날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브리핑에서 '한국이 역사를 바꿔쓰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 고노 다로 외무상의 왜곡된 막말에 '역사를 바꿔쓰고 있는 것은 일본'이라고 반박한 것의 연장선이다.
독도 영토 문제를 공식 회의석상에서 강도 높게 문제제기 한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2020년 도쿄올림픽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하는 것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 적은 있으나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공개 반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일 간 공방이 거세지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일본 정부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 시행 등으로 인해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에 미국 정부가 한일 갈등 봉합을 위한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자청할지 주목된다. 28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양국 모두에게 실망감을 공개 표명하며 한일 대화를 촉구했다. 그는 “최근 한일 갈등 상황을 지켜보며 양쪽 모두에 매우 실망했다”며 “단기적으로는 북한, 장기적으로 중국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중요한 궤도로 신속히 복귀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앞서 공개 강연 행사에 나선 랜들 슈라이버 미 국방부 차관보도 지소미아 연장을 촉구하며, 한일 두 나라가 다시 대화의 장으로 돌아와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