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가 장기화하고 중국 당국의 무력진압 가능성까지 대두하면서 수출입기업과 투자자의 불안감이 연일 증폭하고 있다. 460억달러에 이르는 대(對) 홍콩 수출과 홍콩 증시와 연계한 주가연계증권(ELS)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1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중복합산)으로 한 ELS 발행액은 32조1869억원으로 전체 ELS 가운데 67.5%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달까지만해도 1만800선을 웃돌던 홍콩H지수는 이달 들어 급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홍콩 시위대가 공항을 점거했던 13일에는 9846.64까지 지수가 밀렸다. 이전 고점인 4월 17일의 1만1848.98에 비해 16.9% 떨어졌다. 이후 점차 상승세를 보였지만 지난 16일에도 H지수는 9964.30으로 거래를 마쳤다.
ELS는 만기 내에 기초자산 가격이 미리 정해진 수준 밑으로 하락할 경우 원금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지수 고점 대비 35~50% 하락한 7000선까지 홍콩증시가 떨어질 경우 투자자에게는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홍콩 증시의 급락세로 인한 ELS 손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6일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어 “13일 현재 H지수는 9847포인트로, 지난해 말 대비 2.7% 하락한 수준이어서 이 지수 연계 ELS의 손실 가능성이 아직은 희박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 경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한국무역협회와 코트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 홍콩 무역액은 480억달러 규모다. 이 가운데 수출은 460억달러(약 56조원)에 이른다. 중국, 미국, 베트남에 이어 4번째로 큰 규모다.
홍콩으로 수출하는 주요 품목은 반도체다. 지난해 홍콩 수출액의 60%를 차지한다. 전자기기와 기계류를 포함하면 전체 수출액의 82%에 이른다.
홍콩으로 수출되는 제품의 대부분은 중국으로 재수출된다. 홍콩은 동아시아 금융허브로서 무역금융에 이점이 있고, 중국기업과 직접 거래 시 발생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낮은 법인세와 무관세 혜택도 장점이다.
실제 지난 12∼13일 홍콩 시위대의 홍콩국제공항 점거 이후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융시장 불안은 물론 중계무역 등 실물 경제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역시도 홍콩 도심에서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중국 당국의 강경 진압이 이뤄질 경우 사태 확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홍콩 사태가 미중 무역분쟁 등 다른 대외적 불확실성 요인과 연계해 국내 경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남아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일부에서 홍콩 시위가 경제 우려를 심화시킬 수 있는 '블랙 스완'(검은 백조)이 될 수 있다는 개연성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홍콩 시위가 새로운 지정학적 리스크로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한은 관계자는 “홍콩 사태는 미중 무역분쟁 등 다른 불확실성 요인과도 연계돼 있다”며 “사태가 나쁜 상황으로 번진다면 우리 경제에 어떤 경로로 영향을 미칠지 짚어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