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이 우리 주력 제품인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악영향을 미치기 위해 고순도 불화수소,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을 직접 규제하고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킴에 따라 양국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차원의 일본 상품 불매 운동과 민간 교류 축소 등으로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일본의 수출 기업 역시 우리 기업의 탈 일본 의존성을 우려해 제3국이나 우회 수출하는 방안을 찾으려 하겠지만 일본 정부의 우회 수출 규제도 만만치 않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소재·부품·장비의 대 한국 수출 규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급망 확보를 위해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미진한 기술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등 공백을 메꿔야 한다. 수입처는 이번 일본 사례에서 보듯 한 나라에 집중해서는 안 되며, 기술 개발은 종전과 달리 새로운 형태로 추진하는 인식 전환과 함께 기업 간 연계 방안 등을 모색해야 한다.
첫째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는 부품 하나가 부족하면 장비를 만들 수 없고 장비를 못 만들면 소재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부품·소재·장비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레벨업시켜 나가야 효과를 본다는 체인 특성을 간과하면 안 된다. 특정 기술이 미진한 데에는 글로벌 분업이라는 시장 원리가 작용한 면도 있지만 대기업 스스로 알아서 개발해 나가도록 방관한 측면도 있다. 이제는 기술에 관한 한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관계없이 원천 기술을 미리 확보해 나가도록 틀을 마련해 주고, 이를 토대로 계속 경쟁을 이어 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반도체 분야의 부품·소재·장비는 서로 연계돼 있기 때문에 연구 형태는 '사업단 형태로 드림팀'을 구성·운영해 나가되 단일 과제 추진에 따르는 리스크를 줄이면서 연구팀 간 경쟁을 하도록, 미국 국무성에서 추진하는 중복을 허용하는 방법을 적용해 볼 때다. 가장 잘할 것으로 기대되는 한 과제만을 지원하게 되면 당장은 연구비를 절약하는 것 같고 과제 관리에도 신경을 덜 쓰게 돼 당연시하고 있지만 추진한 과제의 연구 성과가 미흡하거나 실패한 경우에는 그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길조차 막히기 때문에 적극 검토해 봐야 한다. 여기에는 감사원의 열린 연구 감사가 절실하다. 미진한 기술을 업그레이드시켜 나갈 때에는 국산화라는 단기 관점을 넘어 세계 최고에 이르게 한다는 베스트 원(1등)을 지향해 나가고, 개발된 기술은 강력한 파트너와 협력해 성장하거나 조인트벤처를 설립해 중소벤처기업과 상생을 도모해 나가도록 협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기업간 인수합병(M&A)도 과감하게 추진해서라도 조기 확보를 해야 한다. 이 분야는 신뢰성 평가가 매우 중요한 만큼 정부와 민간이 12인치 웨이퍼에 기반을 둔 대규모 테스트베드를 함께 마련해서 이용해야 한다. 나노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나노종합기술원에서 운영하는 나노종합팹과 같은 기반을 마련해 주면 될 것 같다.
셋째 경제 전쟁에서 승리는 실력에 있고, 완벽한 준비가 결과를 좋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기술 차이가 나는 부분은 더 우수한 기술로 앞질러 가면 된다. 우리는 그동안 정부와 기업의 치밀한 전략으로 주력 산업을 키워 온 덕에 포항제철의 철강은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유니온스틸보다 우수한 수준에 이르렀고, 삼성의 반도체는 일본의 마쓰시타·NEC(일본전기)보다 월등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의 조선은 일본의 가와사키중공업이나 독일의 함부르크조선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우리는 힘을 모으면 생각 이상의 큰일을 해내는 DNA를 지니고 있다. 일본은 이전에도 자기들과 경쟁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려고 하면 제품 가격을 크게 낮추는 덤핑 전략으로 맞서 연구개발(R&D)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향후 일본은 수출 규제를 위한 수도꼭지 전략을 구사하면서 우리의 기술 개발 노력을 막으려는 수법으로 괴롭힐 것이다. 수출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것처럼 시장을 불확실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우리가 여기에 휘말려선 안 된다. 수도꼭지 전략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명품시계를 작동시키는 스프링 전략으로 부품·소재·장비 일류화를 도모해 나가야 한다.
과학기술은 이제 국가 발전, 경제 성장, 국가 안보, 보건복지, 환경 보전, 국가 경쟁력 확보의 필수 요소여서 과학기술의 뒷받침 없이는 굳건하게 나아갈 수가 없다. 모처럼 산업계가 마련한 대일 수출 규제 대응이 차분하고 지속해서 추진될 수 있도록 정치·사회 관점에서 힘을 몰아 줘야 한다. 그래야 우리에게 내일의 희망이 보인다.
김영식 동국대 석좌교수, 한국기술벤처재단 이사장 mostyskim@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