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제전쟁]전문가들이 보는 대응책과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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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를 전략물자 수출 간소화 대상국인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지만 국내 기업은 대체로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수입 신청·허가에 90일이 걸리는 등 절차가 번거로워지지만 수출 금지가 아닌 만큼 제품 조달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수입 업무에 신경쓰되 양국 정책 변화 상황을 주시한다는 분위기다. 대체 공급처를 국내외에서 찾을 수 있는 분야는 되레 이번 사태가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공급망 다변화 필요성이 절실해진 만큼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국산화 프로젝트나 공급망 이원화 시도가 속도를 낼 수 있는 동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재고관리·수입절차 긴밀히 대응”

국내 산업계는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가 어느 정도 예고됐던 만큼 생산에 필요한 소재·부품 조달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 정부가 수출을 금지한 것이 아닌 만큼 수입 신청·허가에 걸리는 90일에 맞게 재고 관리와 수입 절차에 꼼꼼하게 대응하는 것이 단기 전략이다.

중장기로는 일본 의존도가 높은 원재료 등 수급 다변화를 지속 꾀할 방침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이번 일본 정부가 타깃으로 삼은 첨단 미래산업 분야 기업을 비롯해 관련 후방기업 대부분이 그동안 공급망을 점검하고 대체 활로를 모색해왔다.

삼성전자 한 협력사 관계자는 “삼성은 워낙 공급망 관리가 철저하고 까다로워서 행여 수입 허가를 신청한 물품이 다른 용도로 사용됐다는 등 이유로 기각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사실상 수출 허가를 해주지 않을 명분이 없는 만큼 90일 안에서 수입·수출 업무가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여러 강구 방안 가운데 하나로 일본 공급사와 수출관리 내부규정(CP) 인증에 대해 협의 중”이라면서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더라도 실제 충격은 크지 않다는 게 내부 판단”이라고 말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 관계자는 “엄밀히 말해 일본 수출 제재로 직격탄을 맞는 건 실제 수입·생산을 담당하는 중견기업”이라면서 “전수조사로 피해 발생 지점과 규모를 특정하고 원·하청 구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업 간 광범위한 소통과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을 국산화했거나 연구개발 중인 기업은 이번 일본 정부 결정이 중장기 관점에서 성장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기대감을 표하기도 했다.

한 반도체 부품 관련 기업 임원은 “전방기업이 잘 돼야 협력사도 잘 되므로 단기로는 전방기업이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영향을 받겠지만 조금만 멀리 보면 분명히 그동안 기회를 잡지 못한 국내외 협력사에는 큰 기회”라고 말했다. 또 “일본 화이트리스트에 속하지 않은 다른 국가 사례를 보면 큰 문제없이 수출·수입 절차가 이뤄지고 있고 관련 프로세스도 잘 정립돼 있더라”면서 “당장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실제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전략적 정책 재정비 절실” 한 목소리

이번 사태를 발판으로 삼아 정부가 그동안 문제로 지적돼온 정책을 체계적으로 재점검해 전체 산업계 현황와 연구개발 정책을 파악한 뒤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 전반에서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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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태 KAIST 교수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협력을 잘 이끌어 왔고 중국·대만 등 다른 아시아 국가와도 문제없이 교역을 하고 있다”면서 “일본은 우리 제품을 수입하지 않더라도 다른 곳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 대안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비대칭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로 직접 영향을 받은 우리 기업이 직접 대응할 수 있는 카드가 적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 “제조 공장을 일본으로 옮겨 피해를 줄이는 방안까지도 고려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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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두 서울대 교수

이신두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이번 사태를 국내 첨단산업 생태계 패러다임을 확 바꾸는 계기로 삼고 체계적인 정비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가장 먼저 산업과 기술 관점에서 통계를 다시 정리해야 한다”면서 “그동안 입맛대로 구성해 온 통계를 기술 관점에서 다시 정리해야 제대로 된 정책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단기 전략과 장기 전략으로 나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단기로는 국가가 짧은 기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를 파악하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대체 공급망을 파악해 기업이 수익 문제를 겪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장기로는 일본 의존도가 높은 소재산업을 고부가가치 미래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한국이 잘 할 수 있는 분야,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중요 분야를 파악하고 이에 맞는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대부분 주력산업에서 경쟁력이 일본보다 열위지만 개선 속도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면서 “대기업 간, 대·중소기업 간 유기적 연결이 가능한 산업협력 시스템 구축에 경제단체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류태웅기자 bigheroryu@etnews.com,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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