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구 박사의 4차 산업혁명 따라잡기]<4>산업혁명을 촉발시킨 비정상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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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된 비정상 환경의 원인을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주원인은 있기 마련이다.

영국에서 1차 산업혁명이 간절히 필요로 하던 비정상 환경은 인도산 면직물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인도는 기원전 3000년께부터 면직물을 만들어서 이집트, 중국 등 여러 지역에 수출해 왔다. 1613년 영국 동인도회사가 인도산 면직물 캘리코를 처음 수입한 후 인도산 면직물은 유럽 전체로 확대됐다. 수입된 면직물은 처음에 상류층에서 사용되다가 값이 싸고 착용감이 좋으며 염색이 잘되는 장점 때문에 서민층으로 확대되고, 수요가 폭증했다. 인도산 면직물 수입이 급증하면서 성장하고 있던 모직 산업이 붕괴 위기에 놓이고, 모직 산업 종사자들의 항의가 심해졌다. 수입되는 면직물에 높은 관세를 물리는 것을 넘어 1686년 프랑스, 1701년 영국에 이어 베네치아, 프러시아, 스페인, 오스만튀르크가 면직물 수입을 금했다. 프랑스는 밀수업자를 사형에 처하는 법까지 제정했지만 폭증하는 면직물 수입을 막지 못했다. 인도산 면직물 수입으로 모직 산업이 얼마나 큰 위기에 맞딱뜨렸는지를 알 수 있다. 영국은 이 위기를 극복할 대책이 필요했다.

2차 산업혁명을 잉태한 비정상 환경은 1차 산업혁명의 한계에서 초래됐다. 1차 산업혁명이 절정을 이루던 1840~1852년에도 영국이 생산한 철의 약 절반이 남아돌 정도로 산업혁명 효과는 섬유 산업 이외 다른 산업의 영역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무렵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 분할을 마무리했고, 섬유 산업 수요처 역할을 하던 식민지 시장이 거의 포화상태가 됨에 따라 경제 성장은 둔화되기 시작했다. 반면에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노동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노동 임금이 상승했고, 약 900만명이 신대륙으로 이주함에 따라 임금은 더욱 뛰어올랐다. 식민지로부터 들어오는 수익이 줄어들면서 1873~1896년에 발생한 대공황으로 빠져든다. 이에 따라 식민지 경제를 대체할 새로운 생산 체제가 필요했다.

2차 세계대전은 대량 생산 체제와 과학기술 위력을 확인시켜 준 전쟁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동서 냉전 체제 간에 펼쳐진 우월성 경쟁이 세계를 지배했다. 그 바닥에는 신기술 경쟁, 생산성 경쟁이 깔려 있었다. 1957년 10월 4일 옛 소련이 쏘아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는 서방 진영을 충격에 빠뜨리는 한편 우주 개발 경쟁은 물론 군비 경쟁, 생산성 경쟁을 가속시켰다. 이념 및 정치 요구를 충족시킬 생산 혁신의 필요성과 함께 사람의 움직임이나 심리 상태를 과학 관리하는 방법(테일러리즘)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한계 수준에 접근하고, 노동 조건 개선이나 임금 상승 요구가 커지면서 이를 넘어설 새로운 생산 혁신이 필요했다.

20세기 후반 들어와 한·중·일 등 아시아 3룡,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BRICS·브릭스), 멕시코 등 후발 산업국들이 약진하면서 세계 경제에서 선진국들의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성장이 둔화되고 실업률이 증가하는 정체 상태에 빠져 있던 선진국에 치명타를 가했다. 선진국은 금융위기를 거치는 동안 탈제조업 결과가 가져오는 위험성을 경험하면서 후발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확실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조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현재 자동화 생산 체제는 전 세계에 보편화돼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고, 한계 수준으로 고도화돼 더 이상의 개선도 쉽지 않다. 게다가 기후변화, 자원고갈, 환경오염 등 제조업의 근본 변화를 요구하는 이슈가 등장했다. 제기되고 있는 글로벌 이슈에 대응하면서 자동화 생산 체계를 대체하고 경쟁국을 압도할 새로운 생산 패러다임이 필요하게 됐다.

다음 주에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서 이러한 비정상 환경을 극복해 가는 계기가 되는 과정을 알아본다.

박종구 나노융합2020사업단장, '4차 산업혁명 보고서' 저자

jkpark@nanotech2020.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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