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인공지능(AI) 분야 교수를 만나면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AI와 전혀 상관없는 인문대학·사회대학 학생들로부터 AI를 배우고 싶다는 요청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 교수는 공과대학 수업을 듣고 싶어서 찾아오는 비(非)공대생이 거의 없던 과거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라고 하나같이 덧붙였다.
대학도 변하고 있다. AI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해서 전체 학생이 듣도록 추진하는 대학이 속속 생겨났다. 공대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과생의 수요 요구를 반영한 결과다. 학령인구 감소, 등록금 동결이라는 위기를 겪고 있는 대학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발 빠르게 학생 중심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는 인문대학, 사회대학 등 공대가 아닌 단과대학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문과충' '문송' 등 인문대학을 비하하는 단어가 회자된다. 공대에 비해 점점 더 취업이 어려워진 단과대학의 취업 상황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문대학·사회대학은 공대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인간과 사회를 고민하고 이해하는 학문은 모든 과학, 기술 산업 분야의 시작점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이를 응용할 수 있는 철학과 인간에 대한 고민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혁신 서비스로 나아갈 수 없다. 외국도 인문대학·사회대학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AI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스탠퍼드 인간중심인공지능연구소(HAI)'도 인문학에 중점을 뒀다. 철학교수 존 에치멘디가 공동소장직을 맡아 '인간' 중심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AI 전문대학 '스티븐 슈워츠먼 컴퓨터 칼리지'도 학제 간 융합 연구에 중점을 뒀다. 교수진 50명 가운데 컴퓨터과학 전공자가 절반, 다른 연구 부문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한다.
AI에 여러 학문이 결합된다면 단순 기술 발전을 넘어 창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대학에 부는 AI 열풍이 인문대학·사회대학과 결합해 무한한 시너지 효과가 나길 기대해 본다. 인문대학·사회대학에 대한 잘못된 사회 통념을 뒤집는 변화의 바람이 대학에서 시작되길 바란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