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소재 국산화, 다시 시작하자 <3>배터리 "모래 위에 세운 배터리 강국…중간 생태계 육성해야"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리튬이온 배터리 핵심 4대 소재 국가별 점유율 추이이차전지 주요 소재 국가별 공급사와 일본 의존도

# 한국과 일본 간 경제 갈등이 확산되는 가운데 일본의 대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넘어 '제2의 반도체'로 키우고 있는 배터리 분야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차전지 주류를 이루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1991년 일본 소니(현 무라타)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이에 따라 관련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도 일본이 원천기술을 보유한 사례가 많다. 다만 현재 국내 주요 배터리 업체 소재 공급망이 대부분 이원화돼 있고 국내에도 대체재가 존재하기 때문에 수출 규제가 확대된다고 하더라도 당장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하지만 개발 단계부터 스마트폰 업체나 자동차 제조사로부터 승인을 받아 생산을 진행하는 업종 특성상 반도체·디스플레이와는 다른 양상의 수급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는 나온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관련 소재 공급망은 취약한 만큼 장기적으로 국내 이차전지 소재 생태계 육성에 공을 들여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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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에서 '원조' 일본을 누르고 글로벌 강국이 됐다. 소형 배터리 시장에서는 삼성SDI가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는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3사가 모두 상위 10위권 내에 들며 세계 주요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배터리 소재로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리튬이온 배터리 4대 핵심 소재로 꼽히는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의 경우 중국과 일본에 점유율이 크게 밀린다. 일본 시장조사업체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글로벌 리튬이온 배터리 4대 핵심 소재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여전히 한 자릿수대를 기록했다.

◇배터리 핵심 4대 소재 글로벌 점유율 한 자릿수대

양극재의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9.2% 수준이다. 양극재는 배터리의 용량과 출력 등을 담당하며 전체 성능에 영향을 주고 전체 생산원가에서도 약 4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벨기에 유미코아, 중국 샨샨, 일본 니치아 등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그나마 다른 소재에 비해 엘앤에프, 에코프로비엠, 코스모신소재 등 국내 중견 기업 생산량과 기술력이 높은 편이다. 특히 에코프로비엠이 SK이노베이션과 함께 지난해 NCM811 양극재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등 전기차 주행거리를 높이는 하이니켈 양극재 분야에서 국내 기업 경쟁력이 높은 편이다.

4대 핵심소재 중 국산화율이 가장 낮은 음극재의 경우 글로벌 점유율이 3.9%에 불과했다. 천연흑연계 음극재는 중국이 77.3%, 인조흑연계 음극재는 일본이 18.8%로 시장을 이끌고 있다. 국내에서는 포스코케미칼이 음극재 생산능력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차세대 실리콘 음극소재 분야에서는 대주전자재료와 더블유에프엠 등 국내 기업이 입지를 넓히고 있다.

전해액 점유율도 6.6%로 중국과 일본에 크게 밀린다. 전해액은 전지 내부 양극과 음극 사이에서 리튬이온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소재다. 국내에는 엔켐, 솔브레인, 파낙스이텍 등이 주요 배터리 제조사에 전해액을 공급한다. 전해액을 만드는 전해질 핵심 소재인 리튬염(LiPF6)은 중국 의존도가 높지만 국내 기업 중에서는 후성이 공급한다. 전기차 시대로 가면서 중요도가 높아지는 전해액 첨가제 업체로는 천보, 리켐 등이 있다.

분리막 시장 점유율은 8.1%로 줄어드는 추세다.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 사이에 위치해 전극 간 직접적인 접촉을 막으면서 미세 구멍으로 리튬이온만 통과시켜 전류를 발생시키는 소재다. 전통적으로 필름 기술력이 높은 일본 업체들이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습식분리막 시장에서 일본 아사히카세이에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더블유스코프는 일본 도쿄증시에 상장된 한국계 기업으로 국내에도 생산기지가 있다.

◇국내 배터리 중간 생태계 취약 '사상누각' 우려

각 소재별로 국내 생산업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중소·중견 기업이기 때문에 급성장하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대응해 막대한 시설 투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배터리 업체 요구를 맞추기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도 핵심 소재 상당 부분을 일본과 중국 등 해외 업체로부터 조달하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 종주국이자 소재 강국 일본은 분리막 시장에서 30%대, 나머지 3개 소재 시장에서는 10~20%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기차·이차전지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은 핵심 4대 소재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양극재 66.4%, 음극재 77.3%, 전해액 69.9%, 분리막 54.8% 등 모든 소재 시장에서 5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4대 소재 분야에서는 국내 업체가 존재하지만 이를 만드는 원료 단계로 내려가면 국내 독자 생태계가 전무하다는 점을 업계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전략적으로 자국 소재 업체를 키우기보다는 품질이나 원가 경쟁력이 우수한 일본이나 중국 제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 지원이나 연구과제도 배터리 완제품 분야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국내 이차전지 소재업체 대표는 “초기 개발 단계에서 선도적인 제품을 개발해 배터리 회사에 납품하더라도 대량 양산 단계에 접어들면 중국 업체에 조성을 주고 동일한 제품을 생산해 생산 원가를 낮추는 경우가 많다”면서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 배터리 업체들이 자동차 제조사로부터 단가 인하 압박을 심하게 받다보니 소재 업체 상생보다는 원가 경쟁력 확보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재업체 관계자는 “양극재는 국내 업체들이 경쟁력을 가지지만 그 전단계 반제품인 전구체는 중국에서 들여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를 구성하는 핵심 광물인 코발트, 니켈 공급망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배터리 완제품 분야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 경쟁력이 있지만 이를 구성하는 중간 생태계는 너무 취약한 만큼 향후 산업이 건전한 방향으로 가려면 배터리 업체 뿐 아니라 원료, 소재 업체들이 탄탄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