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업계도 핵심 소재 상당수를 일본으로부터 공급받는 만큼 일본의 추가 경제 보복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외에 배터리 영역으로 일본산 공급망 리스크가 확대될 것에 대비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배터리 제조사 구매팀은 각 소재 업체를 통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양극재나 전해액 등 배터리 핵심 소재 업체들도 생산에 쓰이는 일본산 원료 현황과 대체재 유무를 확인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수출 규제가 현실화하더라도 배터리 업계에 미칠 결정적인 파장은 없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미 공급망을 이원화, 삼원화하고 있어 일본산 수입이 어려워진다하더라도 국산이나 중국산으로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로선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영향이 전혀 없지만 수출 품목이 확대될 가능성을 가정하고 대응에 들어갔다”면서 “핵심 소재인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 분야 공급처를 두세 업체로 다변화하는 노력을 이미 하고 있고 내재화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우려가 현실화되더라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극재의 경우 LG화학은 일본 니치아화학공업으로부터 일부 조달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엘앤에프로부터도 상당 물량을 받고 있고 최근 내재화율도 끌어올리고 있다. 삼성SDI는 양극재를 벨기에 유미코아와 국내 에코프로비엠, 코스모신소재 등을 통해 주로 조달한다.
음극재의 경우 LG화학과 삼성SDI가 일본 미쓰비시화학으로부터 일부 물량을 조달한다. 하지만 중국 BTR와 샨샨으로부터 공급 물량이 있고 국내 포스코케미칼 비중도 점차 커지는 상황이다.
분리막은 일본 아사히카세이와 도레이가 세계 시장 1, 3위에 올라있어 두 업체로부터 제품을 공급받는 LG화학과 삼성SDI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 습식분리막 시장 2위 업체로 내재화는 물론 외부 공급을 위한 생산능력을 늘리고 있다. 한국계 기업인 더블유스코프도 생산능력을 늘리고 있으며 LG화학은 자체 세라믹 강화 분리막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전해액의 경우 미쓰비시케미컬, 센트럴글라스, 우베 등 주요 일본 기업이 공급망에 포진해 있다. 하지만 엔켐, 솔브레인, 파낙스이텍 등 국내 기업 물량도 늘고 있고 중국산 비중도 적지 않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 중 SK이노베이션은 일본산 의존도가 낮아 타격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4대 핵심소재 중 하나인 분리막을 자체 생산하고 있다. 나머지 핵심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 전해액도 대부분 국산과 중국산을 사용하고 있다. SKC가 동박 업체 KCFT를 인수하고 SK주식회사도 중국 왓슨스 지분을 인수하는 등 계열사 차원에서 배터리 핵심소재 내재화를 진행 중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4대 소재 외에 핵심 소재 중에서 일본 비중이 높은 분야는 바인더다. 바인더는 양·음극재를 용매에 분산시키고 극판에 잘 접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수계와 유계 분야에서 일본 쿠레하와 제온이 대표 기업이다. 음극 집전체로 쓰이는 동박은 국산화 비중이 높은 편이지만 동박 제조에 쓰이는 티타늄 드럼은 일본 몇몇 업체에서만 제조하고 있어 일본 의존도가 높다. 알루미늄 파우치도 일본 DNP와 쇼와덴코가 대표적인 기업으로 세계 점유율이 70% 가량으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업계에서는 핵심 소재 이원화로 배터리 생산 공정상 문제는 거의 없지만 이미 승인받은 소재를 다른 소재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고객사 승인을 새로 받아야 하기 때문에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이차전지 소재업체 관계자는 “일반 범용 제품과 달리 스마트폰이나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는 개발 단계부터 최종 고객사인 스마트폰 제조사나 완성차 업체로부터 4M(Man, Machine, Material, Method) 승인을 받는데 일본산 특정 원료에 대해서만 승인을 취득한 경우 대체 원료로 생산하려면 새로 검증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면서 “상당히 긴 검증기간을 고려하면 일본산 원료 수출이 제한되고 승인 문제가 생길 경우 생산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