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소재 국내 1위 업체인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KEP) 공장이 한 달 넘게 정상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글로벌 고객사 삼성, LG, 소니, 포드 등은 핵심 소재 수급에 차질을 빚을까 재고 확보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8일 화학업계에 따르면 KEP 울산 공장 제조 라인 가운데 일부가 두 달 가까이 멈췄다. 애초 전체 가동을 중단했으나 6월부터 차츰 복구된 것으로 전해졌다.
KEP가 제조에 차질을 빚은 것은 이례적이다. 이 공장에서 연간 10만5000톤 생산하는 폴리아세탈(POM)은 전 세계 100여국에 수출된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12%에 이른다. 국내 점유율은 1위(65%)다. POM은 전기·전자, 자동차, 산업자재 등 첨단 제품의 구조부품 소재로 쓰이는 핵심 자재다.
가동 중단은 경영난이나 산업재해 등의 이유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관계자는 “경영 악화에 따른 임금 체불이나 산재가 발생하면, 당 지청에 즉각 보고된다”며 “하지만 관련 내용이 접수된 바 없다”고 말했다.
KEP는 지난해 매출 3550억원, 영업이익 800억원을 올렸다. 1년 내 상환해야 하는 유동부채는 570억원에 불과하다. 우량 회사인 셈이다.
업계 안팎에선 경영상 이유보다 내부 갈등이 표출된 결과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해외 자본과 국내 직원들 간 마찰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KEP는 1987년 효성(50%)과 일본(50%) 자본이 투자해 설립한 회사다. 이후 세계적인 화학사인 미국 셀라니즈가 효성 지분 전량을 양도받아 1999년부터 경영하고 있다.
한 업계 고위 관계자는 “얼마 전 KEP 직원들이 파업을 벌였고 이를 못 마땅히 여긴 미국 본사가 중요 보직자 등 정리를 위해 총괄 감사를 실시한 것으로 안다”며 “직원들이 이에 반발하는 등 어수선한 상황에서 공장 가동이 중단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결재권자들이 감사를 받으면서 설비 투자 등 추진 중인 사업들도 중단된 것으로 안다”며 “완벽히 수습되려면 상당 기간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고객사 중심으로 혼란이 커지는 모양새다. KEP로부터 납품받는 주요 업체는 삼성, LG, 현대·기아차, 현대모비스, 소니, 포드, GM 등 글로벌 회사들을 망라한다.
이번 가동 중단으로 KEP가 창고 내에 보관 중이던 500억원 안팎의 재고 자산도 빠르게 소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KEP와 동일한 제품을 납품해줄 수 있는 지 관련 문의가 경쟁사 등에 빗발치고 있다”며 “아직 재고가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문제 없지만 고객사들이 향후를 대비하기 위해 대응에 나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KEP 측은 내부 감사를 실시한 것은 맞지만 사실과 일부 다르다는 입장이다.
존 카마뇨 KEP 대표는 “내부 감사 중 일부 미비 사항이 발견됐고 약 3주간 공장 전반을 점검했다”며 “보통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유지보수를 하는데 올해는 전체 생산량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 번에 했다”고 말했다. 통상적인 법규준수 점검이었다는 얘기다.
이어 “재고 상황과 관련해선 일부 주요 고객사께 불편을 드린 게 맞지만 전반적으로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고객사 이탈을 막기 위해 당사 브랜드로 주주사에서 물량을 제공하는 등 재고 문제는 거의 해소됐다”고 덧붙였다.
류태웅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