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산티아고 순례길이 남긴 노래 이야기
최근 인기리에 끝난 <스페인 하숙>을 계기로 산티아고 순례길이 새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그 길을 다녀왔고,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 길의 깊은 의미를 담아낸 책은 드물어 아쉬웠다.
이 책은 ‘유인혁’이라는 필명으로, 1990년대를 풍미했던 민중가요 <바위처럼>을 작곡한 안석희 작가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떠오른 노랫말과 그가 만든 노래에 대한 이야기다.
길은 지난 세월의 아픈 기억을 내려놓게 했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그 여정에서 노랫말이 떠올랐고, 그가 예전에 만든 노래도 새로운 의미를 더했다. 루이 암스트롱, 존 레논, 존 바에즈, 레너드 코헨, 밥 말리의 노래도 든든한 벗이 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그는 길을 걸으며 매일 노래를 짓겠다는 상상을 하며 <하루의 노래>를 짓는다. “오늘 내가 걸어온 그만큼/ 풀려나오는 내 하루의 노래/ 인연 닿은 사람들과 발길 닿은 풍경들/ 그 사이 떠오른 기억, 꿈과 바람들/ 오늘은 이 노래로 남김없이 짓고 잠을 청하네/ 내일은 또 무얼 만날까, 그 하루도 절로 풀어지겠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먼저 다녀온 친구의 권유로 동료 순례자들에게 들려줄 영어 노래, <장미는 지고>도 만들었다. 때때로 알베르게(순례자들의 숙소)에서 작은 공연이 펼쳐졌고, 순례자들은 따뜻한 박수로 화답했다. 한국 노랫말도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의 마음에 닿았다.
피레네 산맥을 넘던 첫날 그는 매일 길 위에서 노래를 짓겠다는 결심을 내려놓았다. 단 하루만 걷다보면 알게 될 거라던 친구의 말이 이해되었다. ‘그냥’ 걸었다. 삶 또한 그냥 그런 거라며 무거웠던 기억과 이별했고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메모로 남긴 노랫말에 가락을 붙여 <빠란떼> <진짜 바라는 건> <남쪽엔 봄이> <안녕>을 만들었다.
"그래 그렇다. 삶이 그냥 그런 거다. 조금만 더, 웃고 울며 살아가지 뭐. 그동안 안 그런 척하느라 힘들었고, 그런 척 애쓰느라 힘들었다. 언제든 나에게 만트라(진언)처럼 말해 주고 싶었다. 하고 싶으면 하렴, 어차피 안 되면 못하는 걸. 걷는 일이 그랬잖아. 여기서 사는 일도 그렇겠지. 잘 안 되면 어쩌랴, 그 또한 그런 거겠지. 무얼 하든 그렇게 충분히, 충분히 해보렴. 바로 여기서 말이야. 이곳이 산티아고 길 아니겠니. 그러니 지금, 여기가 또 새로운 여행의 시작일 거야."
이 책은 노래 이야기뿐 아니라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세히 안내한다. 중간 중간 예비 순례자들이 참고할 만한 팁도 수록했다.
▶ 출판사 서평
길을 나서는 사람들을 위한 송가(頌歌)
프랑스 남부 생장부터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800km 순례길.
<바위처럼>을 비롯해 많은 민중가요를 만든 아티스트이자 사회적기업가였던 안석희 작가가 이 길 위에 섰다. 40일 동안 걸으며 만난 순간은 지난 세월의 기억과 버무려졌다. 자연스레 노랫말이 떠올랐고, 훗날 노래가 되었다. 익숙했던 노래들도 다른 울림을 전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그는 길을 걸으며 매일 노래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피레네산맥을 넘던 날 내려놓았다. 찬찬히 자신을 돌아보려던 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냥 걸었고, 그냥 길에 자신을 맡겼다. 노랫말이 떠오르면 메모를 했고, 길에서 만난 풍경과 기념물 앞에서 익숙했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친구를 사귈 생각은 없었지만 계속 마주친 인연이 친구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친구들 앞에서 기타를 치며 예전에 만든 노래를 불렀다. 한국 노랫말이었지만 친구들에게 충분히 그 울림이 전달되었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그냥, 그렇게 “걷는다는 행위만으로 풀려나가는 것이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어떤 것을 만나든 ‘안녕!’ 하며 잘 맞이하고 잘 헤어질 수 있는 근육을 키웠다. “버거운 일들은 이제 ‘안녕’이다. 물론, 다시 그런 일이 온다 해도 또 가볍게 ‘안녕’ 하고 맞이하리라.”
작가는 순례길 동료들과 키웠던 우정을 떠올리며 길을 나서는 사람들에 따뜻한 말을 전한다. “여기까지 먼 길을 걸어오며 내 안의 아픔들을 하나씩 떠올리고 풀어낸 것처럼 당신들도 그렇게 자유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작가는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통해 길을 걷는 일이 개인의 아픔을 만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땅, 그 사회의 아픔을 치유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훈풍이 부는 DMZ에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평화와 화해 치유의 길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이유이다. 또한 상상이 현실이 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모든 세대들에게 길노래의 울림이 전해지길 기대한다.
걷는다는 건 풀어지고 가벼워지고 열리는 것. 《산티아고 길노래》는 길을 나서는 사람들을 위한 송가(頌歌)이다.
▶ 저자 소개
안석희
작곡가이자 음반디렉터이며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유인혁’이라는 필명으로 <바위처럼>, <우산>, <나의 낡은 캐주얼화>, <이 길의 전부> 등의 노래를 발표했다. 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에서 ‘노리단’을 인큐베이팅할 때 창단멤버로 합류했고, 노리단이 2007년 문화예술분야 최초 사회적기업으로 탈바꿈하던 때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후 사회적기업 ‘부산노리단’을 운영하다 마무리하고 지금은 서울에서 노래 작업과 더불어 문화예술과 사회적경제에 바탕을 둔 프로젝트와 멘토링, 컨설팅을 하고 있다.
▶ 책 속으로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오면서 한 일들도 그랬다. 뭔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좋은 일인 듯해서,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니까 기대와 두려움으로 발을 들여놓은 선택의 순간부터 삶의 물결을 타고 흐르다 거센 구비를 돌아 잠시 잔잔한 곳에 머무를 때, 그때서야 아! 하고 내가 왜 이걸 선택했는지 알게 되는 순간을 만난다. 그러고 나면 다시 세찬 물살에 휩쓸려도 조금 쉽고 편하게 흐를 수 있게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일이 꼭 그랬다. (7쪽)
12개국에서 모여든, 머리 모양도 피부색도 차림새도 다양한 친구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을 초롱거리고 있다. 기타를 건네받고 무슨 노래를 부를까 생각하다 처음은 노래 대신 아무 말 없이 <진주>를 연주하고 싶었다.(중략)
연주 중간에 갑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 허밍으로 멜로디를 따라 불렀다. 손에 쥔 기타와 ‘우웅~’ 하고 공명이 생겨나 내 가슴에, 그리고 내 앞의 사람들에게도 닿는 느낌이 들었다. 기타 지판과 손가락을 보면서도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어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39쪽)
그때는 답할 수 없었다. 다만, 고통을 외면하는 치유가 아니라 제대로 들여다보고 만나서 보듬는 치유가 되기를, 내 고통만 보는 게 아니라 너의 아픔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감이 되기를, 여기까지 먼 길을 걸어오며 내 안의 아픔들을 하나씩 떠올리고 풀어낸 것처럼 당신들도 그렇게 자유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상징들을 굳게 움켜쥔 조각상의 손을 쳐다보았다. 멀리 날아가지도 않을 벽돌을 움켜쥐었던 내 손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그 마음을 알아. 그러니 이제 무거운 상징과 돌은 그만 내려놓기로 하자. 그때의 뜨거운 마음도 같이. 텅 빈 손으로 가볍게 너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다면 좋겠다. 산티아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 (150-151쪽)
푸짐하게 먹고 마신 뒤 잠자리에 들었는데 한밤중에 벌떡 깨어났다. 뭔가 빠진 듯했다.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 무언가를 태우고 싶었다. 아침이 되자 배낭을 메고 다시 등대로 향했다. 절벽 아래로 내려가 어제 책을 태웠던 그 자리로 갔다. 바다를 보고 자리에 앉아 수첩을 꺼내 내가 태어난 해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한해 한해를 적었다. 그리고 한장 한장 뜯었더니 양이 꽤 됐다. 손에 들고 들여다보았다. (중략)
나를 아프게 했던 여러 기억도 같이 떠올렸다. 그때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걸 이젠 잘 알고 있다. 메모장들을 하나하나 모두 태우고 나니 한 줌, 하얀 재가 남았다. (중략)
이제 어떤 것을 만나든 “안녕!” 하며 잘 맞이하고, 헤어질 때도 “안녕!” 하며 잘 헤어지고 싶다. 그렇게 좀 가볍게 살아가고 싶다. 버거운 일들은 이제 ‘안녕’이다. 물론, 다시 그런 일이 온다 해도 또 가볍게 ‘안녕’하고 맞이하리라. (187-188쪽)
온라인뉴스팀 (on-new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