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장애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등재가 헌법 가치를 무시하는 행위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헌법상 문화국가 원리, 개인행동 자유와 기업 활동 자유, 명확성 원칙이나 비례 원칙 등에 있어 많은 문제점을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임상혁 게임법과정책학회장은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긴급토론회에서 “헌법상 문화국가원리는 국가가 국민 문화영역에 개입하거나 규율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며 “국가가 먼저 나서 국민 행동양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다수 국민을 잠재적인 치료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헌법이 추구하는 문화국가 원리에 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가가 문화를 육성하는 것은 국민 문화 활동을 보장하는 데 그쳐야지 특정한 문화를 적극 만들어 유포하거나 수용을 강제하는 것은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건국헌법 이래 문화국가원리를 헌법 기본원리로 채택하고 있다. 문화 영역에서 기회가 균등함을 선언했다. 개별성, 고유성, 다양성으로 표현되는 문화 자율영역을 바탕으로 한다.
과거 국가절대주의 사상 국가관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국가의 적극적인 문화간섭 정책이 당연했다. 하지만 현재는 국가가 어떤 문화현상에 대해 선호하거나 우대하는 경향을 보이지 않는 불편부당 원칙이 가장 바람직한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게임이용을 질병 틀에 넣고 국가 보호대상이나 후견 대상으로 삼는 것은 우리나라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 자유 이념에도 배치된다. 헌법 10조를 통해 국민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된 일반적 행동자유권과 사적 자치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장애 KCD 등재는 해석과 집행에 따라 게임과 관련된 개인 행동자유와 자기 결정권을 침해할 여지가 많은 셈이다.
임 학회장은 KCD 등재가 이뤄지면 계약 자유나 기업 활동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봤다. 헌법 119조를 무시한 심각한 사적가치 본질 침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유재산제도와 사적 자치 원칙, 과실책임 원칙을 기초로 한 헌법상 경제적 자유를 침해한다”며 “약자보호, 독점방지, 실질평등, 경제정의 관점에서만 과잉금지원칙 아래 제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후퇴 발생 가능성도 언급됐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취급하면 3년 동안 11조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이 난다고 예측했다. 인공지능(AI)이나 가상·증강현실(VR·AR), 자율주행차 등에서 게임 원리에 기초한 상호작용을 기본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도입과정에서 규제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대상범위는 게임산업뿐 아니라 정보기술(IT)산업, 제조업 등 전체 산업분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임 학회장은 “사생활에 대한 개입은 필요 최소한도로 이뤄져야 한다”며 “국민 행동과 사생활에 사회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치료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은 지나친 국가후견 주의적인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