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중독은 1996년 킴벌리 영 박사가 미국 정신의학회에 보고하면서 처음 언급됐다. 영 박사가 제시한 진단 척도를 기반으로 인터넷 사용자를 환자로 판단했다. 당시 큰 반향이 일었다. 2013년 미국 정신의학회가 정신질환진단 통계편람 5판(DSM-5)에 '인터넷 게임장애'를 추가 연구가 필요한 항목으로 포함하며 논란이 시작됐다.
인터넷 중독에 게임이 포함되며 인터넷 게임중독으로 표현이 바뀌었고 '인터넷 게임 장애'로 용어가 정리됐다. 그동안 누구도 명확한 진단 척도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미국 정신의학회가 한계를 인정하고 연구가 더 필요한 영역으로 판단했음에도 세계보건기구(WHO)는 DSM-5와 보고된 임상 사례를 근거로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11)에 게임장애를 포함시켰다. WHO는 새로운 치료 프로그램이 개발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른바 '의료화'다.
의료화는 기존에는 의학적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증상을 질병이나 질환 같은 의학적 문제로 정의하고 치료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국내에서 게임을 의료화하려는 시도는 2013년 시작됐다. 당시 모 정치인은 묻지마 살인을 게임 탓으로 돌렸다. 대한중독정신의학회 출신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게임중독법'을 발의했다. 게임을 마약, 알코올 등과 함께 중독물질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예방을 위해 국가가 중독관리센터를 설립, 치료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강도 높은 산업 규제 방안도 냈다.
법안 발의 후 게임에 중독세를 부과하자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은 '인터넷게임 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과 '인터넷게임 중독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을 냈다. 일명 손인춘법이다. 셧다운제 확대, 매출액기준 기금 징수, 중독 유발 지수 도입 등을 담았다.
손인춘법 핵심은 최대 매출 5% 혹은 5억원 이하 과징금을 업체에 내게 하는 내용이다. 또 여성가족부가 연간매출액 1%이하 범위에서 인터넷게임 중독 치유 부담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조항을 신설했다. 인터넷게임 중독 치유센터를 수립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보호자가 치유를 원하면 강제치료가 가능케 하는 내용까지 담았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 중에는 서병수 부산 해운대구 의원도 있었다. 지역구가 대한민국 최대 게임쇼 지스타가 열리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지스타 보이콧 선언까지 나올 정도로 충격이 업계를 강타했다. 보건복지부도 게임중독 광고를 내면서 지원사격에 나섰다. 소위 신의진법과 손인춘법은 회기가 종료되며 폐기됐다.
2017년 12월 WHO가 28년 만에 ICD 개정안에 게임장애 등재 계획을 밝히면서 갈등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즉각 각지에서 팽팽한 의견 대립이 펼쳐졌다. 찬성 측은 의료화를 거쳐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기대감을 드러냈다. 반대 측에서는 정의와 척도 등 관련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다.
미국게임산업협회, 한국게임산업협회를 비롯해 옥스포드 대학교, 존스홉킨스 대학교, 시드니 대학교 등 세계적 권위 정신건강 전문가, 사회과학자 및 교수진 36명이 WHO 게임장애 항목 신설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브라질, 미국, 캐나다, 남아프리카, 호주 및 유럽 18개국 게임 관련 협회도 공동전선을 구축했다.
이후 최도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게임에 중독세를 부과하자는 주장을 이어갔다. 최 의원은 게임산업 중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카지노·경마·경륜·경정·복권 등 다른 사행산업과 같은 입장에서 게임업체도 게임중독자 예방 및 치료에 사용하기 위한 게임중독 예방치유 부담금 부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행산업 사업자는 전년도 매출에 0.35%를 도박 예방치유 부담금으로 낸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WHO가 게임을 질병으로 등재하면 국내에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복지부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을 운용 중이며 올해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전년과 같은 35억원을 배정했다.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는 알코올, 마약, 도박, 인터넷 게임 등으로 유발되는 중독을 관리한다. 인터넷 게임만 ICD에 등재되지 않은 항목이다.
전국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등록한 인터넷게임 중독 상담자 수는 연평균 200명에도 미치지 못해 실제 치료가 필요한 게임 장애 수요가 높지 않다. 의료화로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섣불리 도입할 경우 무리한 환자 만들기 같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이유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