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포럼]'보조·지원금에 성장 멈춘 민간 시장 살리자'

올해 말이 되면 우리나라 전기차 보급 수가 10만대를 돌파한다. 국가 전역의 전기차 충전인프라는 이미 정부가 구축한 시설만 약 3만기(급속충전기 6000기 포함)에 달한다.

전기차에 대한 시장 인식은 높아졌고, 충전인프라 등 이용 환경도 크게 개선됐다. 이젠 정부의 전기차 정책이 일방적인 보급 위주에서 산업화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6일 서울 서초구 한전 아트센터에서 '한국전기차산업협회 창립기념 포럼' 행사가 열렸다. 국내 전기차·부품·충전서비스·충전기 등 20여 제조업체 대표들로 구성된 협회는 이날 '민간주도 충전서비스 시장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정부와 관련 산업계는 민간 주도형 시장 생태계 구축에 뜻을 같이하고, 필요한 정책 방향 및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박규호 전기차산업협회 회장은 “정부가 전기차 시장 확대를 위해 마중물 역할을 했다면, 앞으로는 민간 시장 육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데 정부와 업계가 공감하는 자리였다”며 “협회는 민간 시장 활성화를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는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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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서초구 한전 아트센터에서 한국전기차산업협회 창립기념 포럼 행사가 열렸다. 김승규 전자신문 부장(왼쪽부터), 황우현 한국과기대 겸임교수, 최웅철 국민대 교수, 김시호 한충전 사장, 정민교 대영채비 사장, 김행우 파워큐브 부사장, 이충렬 시그넷이브이 본부장이 민간주도 충전서비스 시장 활성화 방안을 주

◇정부 보조금·지원금에 성장하지 못한 충전서비스 시장

이날 충전 업계와 학계는 정부의 충전기 보조금과 전기요금 지원이 초기 시장 안착에 큰 효과를 냈다는데 공감하면서도 산업화에는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웅철 국민대 자동차융합대학 교수는 “정부가 충전인프라 확대를 위해 충전기 보조금과 전기료를 지원한 건 잘한 일이지만 반대편 사업자 입장에선 돈을 벌수 없는 구조였다”며 “정부 주도의 시장 생태계가 계속된다면 민간기업은 사업을 영위하기가 더욱 힘들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최 교수는 충전요금을 전기요금 근거로 책정하지 말고 주차·충전 시간, 시설 접근성에 따라 사업자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날 정부 보조금을 받아내기 위해 충전기를 부분별하게 설치하는 사례도 지적됐다. 김행우 파워큐브 부사장은 “보조금 경쟁 과열로 사용률이 낮은 곳에 충전기가 설치된 곳이 적지 않다”며 “사용 빈도나 충전 사용량에 따라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적 개선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환경부와 산업부의 역할도 '보급'과 '산업화'로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시호 한충전 대표는 “국내 충전인프라 정책이 양적인 보급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유럽 등 해외 국가들처럼 다양한 서비스 모델이 나오지 못했다”며 “환경부는 친환경차의무판매제 등 전기차 보급에, 산업부는 전기차·충전인프라 산업화를 위한 이전보다 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전기차 보급 초기부터 충전기 산업이 국가 보조금에 길들여져, 충전 산업이 충전기·서비스 모델 고도화보다는 제품 가격 낮추기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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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서초구 한전 아트센터에서 한국전기차산업협회 창립기념 포럼 행사가 열렸다. 김승규 전자신문 부장(왼쪽부터), 황우현 한국과기대 겸임교수, 최웅철 국민대 교수, 김시호 한충전 사장, 정민교 대영채비 사장, 김행우 파워큐브 부사장, 이충렬 시그넷이브이 본부장이 민간주도 충전서비스 시장 활성화 방안을 주

◇또 하나의 걸림돌 '충전기·충전사업자 간 표준 부재'

이날 업계는 충전서비스 시장 활성화를 위해 현재 충전사업자 별로 제각각인 충전기·충전사업자 간 통신 규격을 하루빨리 일원화해야 한다는데 목소리를 높였다.

글로벌 업계는 사용자 편의 기반의 산업표준인 'OCPP(Open Charge Point Protocol)'를 이미 수년전부터 일괄 적용해 서비스 고도화에 나서는 반면, 국내는 아직까지 사업자 별로 각기 다른 규격을 사용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사업자별로 충전기를 로밍(사용자인증, 과금·정산 일원화)시킬 때 마다 매번 프로토콜 작업을 새로해야 하는 형국이다.

이충렬 시그넷이브이 본부장은 “국내 충전기 통신 규격은 최소 13개로, 하나의 통신 표준규격이 없어서 신규사업자 나올 때마다 다시 로밍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국제 규격인 OCPP를 하루빨리 적용해 서비스 고도화는 물론,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경쟁력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OCPP 적용으로 전국의 흩어진 충전인프라에 대한 작동상태나 고장부위 파악 등 상태 정보 파악은 물론, 충전에 따른 과금이나 고객 관리 등에 일관된 관리가 가능해, 서비스질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민교 대영채비 사장은 “충전기를 납품할 때 프로토컬 맞추는 것 때문에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됐다”며 “OCPP를 적용하면 부하 예측 관리, 충전기 자산 관리를 포함해 사용자 입장에서도 충전설비 원격제어 등 신속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우현 한국과학기술대 겸임교수는 “우리는 이미 태양광 발전설비와 에너지저장장치(ESS)·V2G(Vehicle to Grid) 등의 연관산업 경험이 풍부하다”며 “충전기 단품 산업에 머무르지 말고, 에너지생태계와 연계한 인프라 고도화에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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