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의료기기 업계가 올해 의무화되는 각종 인증으로 시간, 비용 부담을 호소한다. 사용자 안전성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지만, 90% 이상이 영세한 국산 의료기기 업계는 예산, 인력 부족으로 한숨이 커진다.
24일 정부기관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의료기기 품목 갱신제, 비임상시험관리기준(GLP) 제도가 전면 시행되면서 국산 의료기기 업계 부담이 늘어난다. 정부도 기업 부담을 줄이면서 안정성을 확보하는 기준 마련에 고심이다.
의료기기 품목 갱신제는 시중 유통 중인 의료기기 안전성과 효과성을 5년 주기로 주기적으로 검증하는 게 목적이다. 1~2등급 의료기기는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 3~4등급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갱신 심사가 유력하다.
식약처는 이르면 이달 중 갱신제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최근 산업계와 갱신 심사 시 필요한 요건, 자료 등을 논의했다. 유효기간 동안 변경사항을 심사하기 위해 안전성·유효성 자료를 제출, 서류 심사가 유력하다. 제품 허가에 준하는 갱신 심사가 이어질 경우 규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산업계 고민은 국내·외 의료기기 규정이 제·개정된데 따른 검증이다. 의료기기가 복잡, 다양해지면서 국가별 관련 규정이 꾸준히 업데이트된다. 철저한 검증을 위해서는 시험검사가 불가피하다.
한 의료기기 업계 관계자는 “의료기기를 주기적으로 검증한다는 갱신제는 전적으로 필요하다고 보고, 특히 국내외 바뀐 규격을 적용·검증해야 한다는 점도 공감한다”면서 “영세 기업이 대부분인 국산 업계는 제도 시행과 더불어 비용 지출이 늘어나는데 상쇄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5월 1일부터 시행되는 GLP 제도도 예산은 물론 심리적 부담이 크다. GLP는 비임상시험실시기관에서 수행하는 시험 전 과정, 결과에 관련된 계획·실행·점검·기록·보고 사항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준이다. 5월부터 발급되는 의료기기 시험성적서에는 GLP 성적서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즉 의료기기 기업은 GLP 수행기관 성적서를 받아야지만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또 다른 의료기기 기업 관계자는 “기존 시험검사기관이 GLP 기준에 따른 심사 환경을 갖추면서 적지 않은 투자를 했는데, 회수를 위해 검사 비용을 대폭 올렸다”면서 “기존에는 1000만원도 채 안 들었던 검사가 GLP 적용을 앞두고, 두 배 가까이 올랐다”고 주장했다.
국내 의료기기 산업은 연평균 7% 고공 성장 중이다. 하지만 국산 의료기기 기업은 90% 연매출 50억원 이하다. 국산 업계는 안정성을 강화하는 정부 방침은 옳지만, 원가 상승을 반영할 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희병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전무는 “다른 산업은 원재료나 제조과정 원가 상승 요인이 있을 경우 제품 가격을 올리지만, 의료기기는 그러지 못한다”면서 “정부 수가 체계를 바꿔야 하는데, 비용 상승을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료기기 갱신제는 갱신비용과 기준 등을 마련하는데 있어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연구용역 중”이라면서 “내부 기준을 만들더라도 산업계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