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관심을 모았던 녹지국제병원이 개설허가 취소됐다. 지난해 12월 5일 제주도로부터 조건부 개설허가를 받은 지 4개월여 만이다. 허가 취소를 두고 제주도와 녹지그룹 간 법정공방은 물론 국제 소송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17일 제주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녹지국제병원 대상으로 실시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전 청문' 청문조서와 청문주재자 의견서를 검토한 결과 조건부 개설허가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조건부 개설허가 후 정당한 사유 없이 의료법에서 정한 3개월 기한을 넘기고도 개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개원을 위한 실질 노력도 없었다”면서 “의료법 64조에 따라 개설허가를 취소한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녹지국제병원이 개원 기한인 3월 4일까지 문을 열지 않으면서 26일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전 청문을 실시했다. 이달 12일 청문조서와 최종 의견서를 도에 제출했다.
청문주재자는 개설허가 취소에 대해 병원 측이 제시한 15개월의 허가 지연, 조건부 허가 불복 소송 제기 등 개원 지연 사유가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 △내국인 진료가 사업계획상 중요한 부분이 아님에도 이를 이유로 개원하지 않은 점 △의료인 이탈 사유를 충분히 소명하지 않은 점 △병원개설 허가에 필요한 인력을 모두 채용했다고 밝혔지만 청문과정에서 채용을 증빙할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점 등도 개설허가 취소에 영향을 미쳤다.
원 지사는 “12월 5일 조건부 개설허가 이후 개원에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협의하자고 수차례 제안했지만 녹지측은 거부하다가 기한이 임박해서야 개원 시한 연장을 요청했다”면서 “실질적인 개원 준비 노력이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요청은 앞뒤가 모순된 행위로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제주도 허가 취소로 책임을 둘러싼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상된다. 녹지그룹 측은 올 초 내국인 진료금지라는 조건부 개원허가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제주도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투자요청에 따라 778억원을 투입해 병원을 세웠지만 15개월간 허가 지연, 내국인 진료 제한 등 투자자 정당한 기대를 저버렸다는 주장이다.
녹지그룹은 이번 개설허가 취소에 대해서도 행정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사태 귀책사유가 제주도에 있기 때문에 허가 취소 역시 무효라는 주장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행정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병원 준공, 인력 채용 등 800억원에 가까운 투자금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된다. 행정소송과는 별개로 녹지그룹측이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제도'를 활용해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 국영기업 녹지그룹이 투자한 녹지국제병원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적용 대상이다.
제주도 역시 행정소송에 적극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당초 공론화위원회 '불허' 권고에도 영리병원 허가를 내준 점과 녹지국제병원 검증 등에서 책임이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원 지사는 “법적 문제와는 별도로 의료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도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면서 “헬스케어타운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정상화 방안을 찾기 위해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녹지 측과 지속적으로 협의 하겠다“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