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정은 집권 체제에 맞춰 정부집중형 재래 금융 인프라를 정보기술(IT) 기반 전자금융 인프라로 대거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주민의 금융 서비스 질 개선보다는 사경제 활동 확산으로 유통되는 현금을 통제하기 위해 전자금융서비스를 대거 도입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24시간 현금인출기(CD) 설치는 물론 나래카드 등을 기반으로 한 카드 사용 확대, 울림 등 모바일 간편결제 도입, 모든 전자결제가 가능한 쇼핑몰 구축, 비트코인 거래를 중개할 수 있는 솔루션 개발까지 나섰다.
16일 전자신문이 국내 북한 관련 연구소 및 은행 산하 연구소와 함께 북한 전자금융 실태를 조사한 결과 북한도 최근 금융정보화에 큰 관심을 보이며 대대적인 금융인프라 개선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북한 내 평양 지역과 원산 중심으로 신용카드(직불·선불)는 물론 모바일 전자결제 수단까지 전자금융 인프라를 확대했다. 주요 거점에는 24시간 거래가 가능한 현금인출기를 대거 설치하는 등 비대면 금융서비스 확대에 사활을 걸었다. 조선중앙은행은 물론 특수은행·합영은행이 전자결제 카드를 발행하고,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선불·직불 카드를 모두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성카드(조선중앙은행), 나래카드(조선무역은행), 고려카드(고려은행), 금길카드(대성은행), 선봉카드(황금의 삼각주은행) 등이 발행된다. 자체 카드결제 단말기도 내재화했다. 지난해부터 식당과 헬스장, 외국인이 드나드는 대형 상점에 적용했다.
만물상 프로젝트도 눈에 띈다. 대형 쇼핑몰에 전자금융서비스를 입히는 프로젝트다. 현금 위주 거래 관행에서 탈피하기 위해 북한 정부는 민간 기업인 연풍과 손잡고 만물상 전자결제 체계를 도입했다. 일종의 '온라인 쇼핑몰'로 보면 된다.
컴퓨터와 이동통신망에서 전자결제가 가능하며, 내수 기반이 아닌 글로벌 전자상거래 체제로의 확대를 목표로 잡았다. 북한의 모든 카드와 결제 서비스를 통합 연결했고, 각종 무역과 상품 판매도 가능하다. 북한 정권은 이처럼 벌어들인 수익으로 첨단 기술 개발 등 미래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목표도 수립했다.
은행 이미지 쇄신을 위해 최근에는 북한 은행을 가상현실(VR)로 체험할 수 있는 사이트도 공개했다. 은행을 방문하지 않아도 은행 내·외부를 볼 수 있다. 실제 본지가 VR로 '황금의 삼각주은행'을 체험했더니 가는 길 로드뷰부터 내부 모습까지 확인이 가능했다.
암호화폐를 통한 송금과 결제도 최근 일부 시작됐다. 활용도가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고려코인' 등을 개발, 암호화폐공개(ICO)까지 추진하고 있다.
북한 IT 기업 조선엑스포는 비트코인 거래를 중개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 판매하고 있다.
2017년부터 대규모 비트코인 채굴 작업도 정부 차원에서 비밀리에 추진했다. 큰 성과는 올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암호화폐 '모네로' 채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코인 맵에 따르면 비트코인을 수납하는 식당이 평양 4곳, 원산 1곳에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에는 용처가 더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 바(The Bar), 라운드 레스토랑, 민족식당, 클럽 조나, 카페 바 등 실제 상점명을 공개하기도 했다.
김정은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금융정보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본지가 입수한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논문과 학보에는 금융정보화에 대한 필요성과 실행 방안까지 자세히 기술됐다. 리명진 김일성종합대학 연구원이 금융정보화 수준을 높여 금융 거래에 신속성, 정확성, 편리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기술했다. 금융정보화(북한용어: 금융봉사업무기능)를 수행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우수 인재를 확보해야 하고, 24시간 무중단 금융 정보화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유진 한반도신경제센터 연구원은 “북한 당국은 전국 단위의 정보통신망을 구축해 24시간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모바일 지급결제 서비스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사경제 확산으로 유통되는 현금을 끌어모으기 위한 방안으로 전자금융서비스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