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A 칼럼] 영화 ‘남한산성’으로 보는 협상교육의 중요성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김승철

[“조정의 막중대사를 대장장이에게 맡기시렵니까?”라는 서날쇠의 말에 김상헌은 “성이 위태로우니 충절에 귀천이 있겠느냐?”라며 임금의 칙서(勅書)를 전하라는 중대한 임무를 맡긴다.
막상 임무 완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도착한 서날쇠에게 장수가 묻는다.
“어디 소속의 무관이요?” / “저는 무관이 아니라 그냥 대장장이요”
“천한 대장장이한테 막중한 '칙서'를 맡겼겠습니까? 첩자가 틀림없습니다”]

상황은 예상치 못한 결과로 흘러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분의 장벽을 뛰어넘은 결정은 빛을 보지 못한다. 감독이 자신의 관점을 관객들과 공감하기 위해 상황을 극대화한 측면이 있겠지만 신분 차별에서 오는 사회 병폐는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영화 속에서 결정권을 지닌 인물들이 명분에 따른 극도의 대립을 펼치고 각자의 주장만 되풀이했다. ‘최선의 대안(BATN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가장 좋은 조건의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가지고 있는 차선책)’이 없는 ‘의사결정’에 따른 엄청난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의 몫으로 돌아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안타까움이 쌓이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영화는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라는 의사결정(Decision Making)의 무거운 과제를 던진다.

원작인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2007)’ 일부를 통해 리더의 의사결정을 함께 생각해 보자.

[김상헌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들었다.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최명길의 목소리에도 울음기가 섞여들었다. “전하,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소서. 죽음으로써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임금이 주먹으로 서안을 내리치며 소리 질렀다. “어허, 그만들 하라. 그만들 해!”]

영화든 소설이든 얼마 되지 않은 결정의 시간은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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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김승철

리더는 어떤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그 의사결정의 바탕과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무엇이 옳은 것인가? 국가란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최선의 대안(BATNA)’은 없었겠는가? 등등

되돌아보면, ‘협상’이 단순한 ‘흥정’ 또는 ‘얄팍한 처세’, ‘교묘한 태도’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고 그래서 우리의 협상 문화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에 지나지 않았다. 협상을 하려는 자세를 겸손하지 못하고 기어이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태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80년대 말 우루과이 라운드, 90년대 말의 한·미 FTA, 최근의 북미협상까지 협상의 필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지속적인 경쟁우위 창출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협상’이다.

우리는 최선의 대안이 없는 의사결정으로 인해 더욱 큰 아픔을 겪어야 했던 역사적 사건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협상력(Bargaining Power)은 또 하나의 ’국력‘이며,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역량이다. 이를 위해 협상 선진국들처럼 미래의 세대들이 유치원부터 일상생활 속에서 크고 작은 협상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가족들과 영화 ‘남한산성’을 함께 보자는 결정에 이르기까지 식구들 사이에서도 작은 협상이 오갔다. 주말 오후 각자 하고 싶은 것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과 아내는 가족이 주말을 함께 한다는 명분에는 동의하므로 하고 싶던 일을 포기하는 것에 따른 대가를 원했다. 아이들은 팝콘을, 아내는 저녁 상차림 대신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 식사를 원했다. 팝콘까지야 괜찮지만 저녁이 덤이라니. 비용을 생각하니 살짝 고민이 되기는 했지만 양보가 없는 협상이 어디 있으랴.

영화를 본 뒤 우리 가족은 영화의 배경이자, 역사의 무대였던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등산 삼아 자주 가는 곳이기도 하고 근방에 식당이 제법 많아서였다. 넉넉한 상차림을 즐기며 아이들에게 영화가 어땠는가를 물었다. “재미없어.”라고 했다. 표정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이들의 “재미없어”는 “웃기지 않았어, 너무 심각했어.”라는 의미인 듯했다. 그랬다. 아이들의 말처럼 영화 속 상황은 꽉 막힌 동굴 같았다. 최선의 대안, 협상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아이들이 영화를 통해 막연하게나마 협상의 필요성을 느꼈기를 바라본다. 그것이 협상의 가치와 중요성을 전하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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