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10대 반도체 장비업체 일자리가 1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장비업계 고용 시장에도 훈풍이 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취업자 수를 늘리기 위해 각종 일자리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효과가 미미한 것과 대조된다. 결국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10일 전자신문이 국내 10대 반도체 장비업체 상장사 사업보고서의 최근 3년 동안 '임원 및 직원의 현황'을 분석한 결과 2개사를 제외한 8개 기업에서 매년 고용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기업의 지난해 총 고용 인원은 6233명이었다. 전년(5683명)에 비해 9.7% 증가했다. 특히 증착용 전공정 장비 등을 주력으로 하는 유진테크와 원익IPS가 각각 34.67%, 27.59%로 가장 큰 증가율을 보였다. 유진테크는 직원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최근 1년 이내에 입사한 셈이다.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지난해 고용을 늘린 주된 이유는 연구개발(R&D) 수요 때문이다. 업계는 대기업의 설비 투자 확대로 장비 매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제품군 확대와 각 고객사에 맞춤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이 크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한미반도체 관계자는 “반도체 장비는 고객사 수요와 제품에 일일이 대응할 수 있는 R&D 인력이 필요한 게 특징”이라며 R&D 인력을 늘리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또 다른 장비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신규 및 경력 인력을 반반씩 채용했다”면서 “D램 테스트 장비만 생산하다가 낸드플래시 테스트 장비까지 제품군을 늘리면서 새로운 인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다른 제조업 고용은 부진했지만 거의 유일하다시피 호황세를 보인 반도체 분야는 우수한 인력을 수혈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결국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현 정부가 공공 일자리 창출을 통한 취업률 개선을 도모했지만 각종 지표는 나아지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는 생산가능인구 증가분(25만2000명)의 38.5% 수준인 9만7000명 증가에 그쳤다. 이 비율은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또 2013년에 3.1%까지 떨어진 실업률은 2010년 이후 최고인 3.8%까지 올랐다. 실업자 수는 107만3000명이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공공 일자리에 투자할수록 연금 지급에 드는 부채가 늘어나는 등 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데다 양질의 일자리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반도체 장비업계 고용 증가를 보면 알 수 있듯 비용과 효율성을 함께 고려, 기업에 일자리 예산을 투입하고 규제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장비업체가 업황에 구애받지 않고 첨단 반도체 기술을 개발할 우수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서 반도체 생태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홍상진 명지대 교수는 “몇 년 전까지는 정부가 고도화하는 반도체 장비 기술 흐름을 고려하지 않고 '예전에 지원했으면 됐지 않냐'는 입장이었지만 최근의 반도체 산업 비대칭 구조를 인식해서 과제 수를 늘려 나가는 정부의 움직임은 고무적”이라면서 “장비뿐만 아니라 기기에 필요한 부품 등 세밀한 R&D 지원으로 인력이 늘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은 “근본은 민간 중심 고용이 늘어나야 한다”면서 “그러나 성장률 제고나 규제 완화처럼 실질적으로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경영 환경 개선이 없다면 올해 일자리 사정도 크게 나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반도체 장비 10대 기업 고용 추이> 단위:명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